논의내용 놓고 '반박·재반박' 기자회견…진실 공방에 불신만 커져

"불신의 골이 더 깊어졌다.

"
일본 정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한 후 지난 12일 도쿄에서 처음 열린 양국 무역실무 당국자 간 접촉이 오해를 풀기보다는 갈등을 증폭시키는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논란은 지난 12일 첫 회의가 열린 뒤 이번 양자 회의에서 한국 측이 수출규제 강화 조치에 대한 '철회'를 요구했는지 등을 놓고 일본 측이 다른 주장을 하면서 시작됐다.

일본 경제산업성 간부는 양자 회의 후 브리핑에서 "한국 측에 사실관계 확인이라는 일관된 취지로 설명했다"며 "한국 측으로부터 (규제강화의) 철회를 요구하는 발언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간부는 '(한국 측으로부터)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 자유무역에 대한 역행 등의 발언도 없었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WTO 위반인지에 대한 발언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일본의 조치가 공급망을 손상할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공급망 얘기는 우리(일본)도, 한국 측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일 '수출규제' 첫 실무접촉 후 갈등의 골 깊어져(종합)
이에 한국 정부 대표단인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찬수 무역안보과장(오른쪽부터)·한철희 동북아 통상과장은 이튿날인 13일 오전 11시께 하네다(羽田)공항에서 서울로 떠나기 직전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측의 발표 내용을 6개 항목으로 나누어 부인하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일본 측의 한국 수출 규제 조치에 "유감 표명을 했고 조치의 원상회복, 즉 철회를 요청했다"고 강조하는 등 일본 측이 사실관계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 주된 반박 내용이었다.

그러자 일본 경제산업성은 6시간여만인 13일 오후 5시께 한국 대표단의 주장을 재반박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 나선 이와마쓰 준(岩松潤) 무역관리과장은 "문제 해결의 제기는 있었지만, 회의록을 확인해 보니 '철회'라는 말은 없었다"며 한국 측이 사실과 다른 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일 '수출규제' 첫 실무접촉 후 갈등의 골 깊어져(종합)
일본 측은 이번 회의의 성격에 대해서도 "문제 해결을 위한 만남이므로 협의로 보는 게 더 적당하다"는 한국 대표단의 언급과는 달리 "협의가 아닌 사실관계를 설명한 회의로 한국 측과 합의했다"고 반박했다.

전 과장이 세계무역기구(WTO) 위반 문제와 관련한 한국 측 항의가 없었다는 일본 측 설명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마쓰모토 과장은 "한국으로부터 반론은 없었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일본 측은 특히 한국 대표단이 귀국 전 기자회견을 열어 밝힌 내용 중의 일부가 공개하기로 합의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며 양국 간 신뢰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위협하기까지 했다.

비공개 합의한 내용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거론하지 않았다.

일본 측은 주일한국대사관에 이번 일에 대해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이처럼 한일 실무 당국자 간 첫 양자 접촉에서 진실 공방 양상의 불협화음이 불거지면서 상호 불신이 커져 차기 회의를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국 대표단인 전 과장은 13일 기자회견에서 추가 협의 요청이 없었다는 일본 측 주장을 반박하면서 "(12일) 회의 중 수차례 조속한 협의 개최를 요구했다"며 "구체적으로 오는 24일 정령(시행령) 개정에 대한 의견 수렴이 완료되는 날 이전 개최를 수차례 제안했다"고 말했다.

오는 24일은 일본 정부가 수출 심사 과정에서 우대 혜택을 주는 '백색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기 위한 공고가 끝나는 날이다.

이와 관련, 아사히신문은 쌍방이 서로 다른 말을 하면서 일본 측이 유감 입장까지 표명했다며 "사태가 진구렁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NHK는 한국 수출 규제를 둘러싼 실무회의에서 한일 간 견해차가 부각되면서 이르면 다음 달 중순으로 예정된 백색국가 대상에서의 한국 제외가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경제산업성 내에서 강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