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구글, 페이스북 등 자국 정보기술(IT) 대기업들을 겨냥한 프랑스의 ‘디지털세(稅)’에 맞서 관세보복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항공기 제조업체 에어버스와 보잉에 대한 보조금 지급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통상 마찰을 겪고 있다. 디지털세 분쟁까지 불거지면 미·중 무역전쟁에 이어 대서양 무역전쟁까지 터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프랑스 디지털稅에 보복관세 준비
미 무역대표부(USTR)는 10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무역법 301조에 따라 프랑스의 디지털세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무역법 301조는 미국 무역과 투자에 악영향을 미치는 외국의 불공정 행위를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조항에 근거해 중국에 관세폭탄을 안겼다.

프랑스는 다국적 IT 기업들이 자국 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거두면서도 본사를 조세피난처에 두고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을 겨냥해 디지털세를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세는 전 세계 연 매출 7억5000만유로(약 9900억원) 이상이면서, 프랑스 내 연 매출이 2500만유로(약 330억원)를 넘는 IT 기업들에 프랑스 내 매출의 3%를 세금으로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식 발효되면 알파벳(구글 모기업),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 30여 개 IT 기업이 당장 올해부터 과세 대상에 오른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USTR 대표는 “미국은 디지털세가 미 기업들을 불공정하게 타깃으로 삼고 있는 데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 법의 영향을 조사하고 미국의 통상 여건에 차별 또는 비합리적인 부담과 제한을 하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미국과 EU가 각각 항공업체 에어버스와 보잉의 보조금 지급을 놓고 수년간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미 정부는 여기에도 무역법 301조를 적용해 EU산 공산품과 농산물에 고율 관세 부과를 추진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는 유럽산 자동차와 부품에 대해서도 미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관세부과를 검토 중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미 정부가 동맹국에 무역법 301조를 적용하는 것은 매우 드물었다”며 “무역에서 강한 입장을 이어가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전했다. 미국의 경고에도 프랑스 상원은 11일 디지털세를 표결에 부쳐 최종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늦어도 이달 말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서명까지 마무리될 전망이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