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앞줄 왼쪽 세 번째)이 1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 정승일 산업부 차관, 성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앞줄 왼쪽 세 번째)이 1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 정승일 산업부 차관, 성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한국에서 지난 4년간 무기로 전용 가능한 전략물자 밀수출이 156차례 적발됐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한국의 수출관리가 이처럼 미흡한 만큼 일본 정부가 반도체 핵심 소재 세 가지의 수출을 규제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 일본 측 주장이다. 이에 한국 정부는 전략물자 밀수출을 적발한 것은 그만큼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여서 일본이 무리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국 정부는 또 세계무역기구(WTO) 상품·무역 이사회에서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가 WTO가 표방하는 자유무역 원칙에 어긋난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국제여론전에 본격 나섰다.

한국의 전략물자 밀수출 논란

후지TV는 한국에서 지난 4년간 무기로 전용 가능한 전략물자의 밀수출이 156차례나 적발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10일 보도했다. 이 방송은 자체 입수한 한국 정부 작성 리스트를 인용해 2015년부터 올해 3월에 걸쳐 한국에서의 전략물자 밀수출이 이처럼 많았다고 비판했다. 후지TV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 당시 쓰인 신경제 VX 원료가 말레이시아 등에 불법 수출됐고 이번 수출 규제 대상에 들어간 불화수소(에칭가스)가 아랍에미리트(UAE) 등에 밀반출된 적이 있다고 전했다.
日의 황당한 보복논리…우리정부 자료 왜곡해 "韓, 전략물자 밀수출"
앞서 국내 언론은 지난 5월 조원진 대한애국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전략물자 무허가 수출 적발 현황’에서 2015년부터 올해 3월까지 우리 정부의 승인 없이 국내 업체가 생산해 불법 수출한 전략물자가 156건에 이른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와 관련, 노가미 고타로 내각관방 부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의 규제 방침에 대해 “이번 조치가 WTO가 인정하는 안전보장을 위한 수출관리제도의 적절한 운용에 필요한 조정”이라고 거듭 밝혔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무기로 전용할 수 있는 전략물자의 불법 수출을 156건 적발했다는 건 그만큼 국내 통제체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전략물자의 수출관리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일본산 불화수소 등 수출업체를 대상으로 긴급 전수조사를 한 결과 북한으로 유입됐다는 어떠한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 등 해외에서 수입하는 전략물자를 가공해 수출할 경우 최종 수취인과 사용자, 용도 등을 꼼꼼하게 파악하고 관리하기 때문에 일본이 주장하듯 제3국으로 불법 유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한국 “日 규제는 명백한 WTO 규범 위반”

백지아 주제네바대표부 대사는 9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상품·무역 이사회에서 마지막 안건으로 올라온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해 정치적 목적으로 이뤄진 경제 보복이라는 점을 다른 회원국에 설명하고 일본 측에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지난 8∼9일 이틀간 일정으로 진행된 상품·무역 이사회에서 당초 일본의 수출규제는 안건에 없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8일 추가 의제로 긴급 상정할 필요성을 의장에게 설명하고, 의장이 이를 수용하면서 의제로 올랐다.

백 대사는 “일본이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강조한 직후에 수출규제 강화를 발표한 것에 유감을 표명한다”며 일본에 이번 조치에 대한 명확한 해명과 조속한 철회를 촉구했다. 또 일본이 수출규제의 근거로 제기한 ‘신뢰 훼손’과 ‘부적절한 상황’이 현재 WTO 규범상 수출규제 조치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WTO 분쟁에 적용되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11조는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수출·수입 때 수량 제한을 금지하고 있다.

이하라 준이치 주제네바 일본대표부 대사는 일본의 조치가 수출규제가 아니며, 안보와 관련된 일본 수출 시스템을 점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 일본의 수출 규제가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일본이 수출규제를 강화한 반도체 핵심 소재들이 비군사용이라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수출을 허용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FT는 일본 정부 고위 소식통을 인용, “일본 정부는 미국이 중국 화웨이에 취했던 것처럼 한국의 기업을 제재 대상에 포함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럴 경우 한국 반도체 업계는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조재길/정연일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