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이어 터키, 중앙銀 총재 교체…美정부는 '연준 거수기화' 추진
경기둔화 탓 입김 거세질 듯…중앙은행, 경기부진 대응까지 고민 깊어
벼랑에 선 중앙은행…'스트롱맨' 위협에 통화정책 독립성 위기
각국 중앙은행들이 경기 부진에 직면한 '스트롱맨'들의 압력 때문에 통화정책의 위기에 직면했다.

미국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노골적으로 흔드는 가운데 신흥국들에서는 더 과격한 조치가 단행됐다.

터키 정부는 지난 6일(현지시간) 무라트 체틴카야 터키 중앙은행 총재를 해임하고 무라트 우이살 부총재를 그 자리에 앉혔다.

이는 체틴카야 총재에 대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불만이 반영된 조치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고금리가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신념을 지닌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기 경제위기를 겪자 기준금리 인하를 촉구해왔다.

그러나 체틴카야 총재는 소비자물가 급등과 리라화 가치 급락을 고려해 작년에 기준금리를 24%로 올린 뒤 동결을 거듭했다.

8일 터키 안팎의 언론들은 한결같이 이번 사태를 중앙은행 독립성이 파괴된 사례로 지목하고 있다.

중앙은행 총재가 행정부의 압력에 시달리는 사례는 다른 국가에서도 관측된다.

작년 12월 인도에서는 집권세력을 결정하는 의회 총선거를 앞두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수개월 동안 통화정책에 대해 갈등을 빚던 중앙은행 총재가 사임해 논란이 일었다.

사임한 우르지트 파텔 인도중앙은행 총재는 경기부양을 위한 완화적 금융통화정책을 펴라는 모디 총리의 요구에 맞서온 인물이었다.

정부 정책에 순응하는 인사가 그 자리를 메우자 그 사태를 중앙은행의 독립성 침해 사례로 지적하는 목소리가 컸다.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준금리 인하 요구는 통화정책 독립성 훼손의 전형적인 사례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대통령 재선 도전을 앞두고 경제 치적을 만드는 데 주력하면서 경제 성장세를 부양하고 주가를 끌어올릴 목적으로 연준에 금리 인하를 비롯한 완화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 파월 의장의 해임을 추진하다가 법률적 근거가 부족하고 정치적 역풍을 맞을 우려도 있어 중단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부의 요구를 연준에 관철하기 위해 파월 의장을 무력화할 여러 다른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 선거캠프에서 일했던 정치적 추종자들을 통화정책을 결정할 연준 이사 후보로 지명하는 한편 파월 의장을 의장에서 이사로 강등시켜 영향력을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벼랑에 선 중앙은행…'스트롱맨' 위협에 통화정책 독립성 위기
글로벌 경기 둔화가 확산돼 침체 우려까지 가시화함에 따라 중앙은행에 대한 정부 압박은 한층 거세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세계 여러 국가에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재정정책을 쓰는 게 여의치 않게 되면서 통화정책에 요구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모디 총리, 에르도안 대통령처럼 권위주의적 통치성향을 지닌 이른바 스트롱맨이 있는 국가에서는 더 노골적인 압력이 목격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글로벌 경기 둔화가 본격화하면 정부의 통화정책 간섭이 심해질 것이라며 글로벌 경기가 호조일 때 재정적자를 줄이지 못한 각국 정부에 그런 상황이 나타날 것으로 점쳤다.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중앙은행들이 초저금리 정책 등으로 소방수 역할을 해낸 만큼 통화정책에 대한 정부의 기대와 요구가 더 클 수밖에 없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세계은행은 지난달 '세계 경제전망'(Global Economic Prospects) 보고서에서 별도 항목을 통해 신흥개도국들의 정부 부채 증가를 지적하며 이를 재정정책 운용의 걸림돌로 주목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신흥개도국들의 평균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2007년 15%였으나 작년에 51%를 기록했다.

다른 한편에서 중앙은행은 정부 견해에 동의하더라도 선뜻 기준금리 인하와 같은 완화정책을 단행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과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기준금리를 내려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등 전통적인 통화정책 수단의 효과를 둘러싼 회의론을 뒷받침하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를 운용하는 국가들은 둘째치고 다른 국가들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리를 많이 올려놓지 않은 까닭에 향후 경기침체가 발생했을 때 금리를 내릴 수 있는 여력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연준을 비롯한 다수 중앙은행의 관리들은 중앙은행이 정치적 압력에서 벗어나 물가안정과 최대고용과 같은 자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독립적으로 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 때 해당 국가의 경제가 더 잘 작동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