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243주년 독립기념일이 ‘분열’로 얼룩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한 독립기념일 행사가 ‘재선용 정치 쇼’ 논란에 휩싸이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워싱턴DC 링컨기념관 앞에서 1시간가량 독립기념일 기념 연설을 했다. ‘미국에 대한 경례’로 명명된 이날 행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 쇼’ 논란을 의식한 듯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며 통합의 메시지를 던졌다. 건국과 서부 개척, 여성 참정권, 흑인의 평등한 권리를 요구한 시민권 운동 등 미국 역사의 변곡점이 된 주요 사건을 짚은 뒤 “우리나라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며 ‘미국의 힘’을 강조했다.

하지만 행사장 주변에선 지지자와 반대자가 편을 가르는 분열상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수천 명의 지지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구호가 적힌 모자를 쓰고 성조기를 휘날리며 “트럼프”와 “USA(미국)”를 연호했다.

반면 반대자들은 행사장 인근에 ‘반(反)트럼프’의 상징인 ‘베이비 트럼프’ 풍선을 띄웠다. 백악관 맞은편 라피엣공원에선 행동주의자 그레고리 리 존슨이 트럼프 반대 시위 도중 성조기에 불을 붙였고, 트럼프 지지자들이 존슨 측 시위대를 공격해 양측이 충돌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의 7월 4일 기념행사는 지지자들을 스릴 넘치게 했지만 반대자들을 화나게 했다”며 독립기념일 행사를 둘러싸고 ‘갈라진 미국’의 모습을 전했다. ‘친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도 “트럼프의 ‘미국에 대한 경례’에 앞서 긴장이 고조되면서 백악관 앞에서 성조기가 불탔다”고 지적했다.

미 독립기념일 행사는 그동안 정파를 떠나 ‘미국인의 축제’로 치러졌다. 하지만 올해는 트럼프 대통령이 기념 연설을 하고 탱크와 장갑차 전시, 미군 전투기의 저공비행 등 군사 퍼레이드 성격이 가미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용 이벤트’로 변질됐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미국 대통령이 독립기념일에 대규모 연설을 한 건 1951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 이후 68년 만이다.

민주당 대선주자들은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이날 CNN 인터뷰에서 “‘미국에 대한 경례’는 미국의 이상을 기념하기보다 그(트럼프)의 자아를 어루만지는 쪽으로 설계됐다”고 비판했다.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은 “대통령은 이날이 자신의 생일이 아니라 미국의 생일이라는 걸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전날 “이건 독재자들이 하는 일”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군용 탱크의 위용으로 자신을 빛내기 위해 국립공원관리청에서 250만달러를 빼내고 있다”고 비난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