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홍콩 청년이 급하게 마스크를 내밀며 광둥어로 뭐라 했다. 지난 1일 오후 시위대가 진입을 시도하던 홍콩 도심 입법원(시의회) 앞에서였다. 못알아 듣겠다고 하자 “경찰이 당신 얼굴을 찍어 신원을 확인할 수 있으니 마스크를 껴라”는 말이 영어로 돌아왔다. 이날도 55만명 가량의 시민이 시위에 참가하며 홍콩 도심에서 공권력은 무력화됐다. 시위대는 입법원 외에도 케리 람 행정장관 관저 등 주요 시설을 포위하고 진입을 시도했다. 홍콩 도심 일부를 점유하고 농성하는데 그쳤던 2014년의 민주화 시위 ‘우산 혁명’ 때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높아진 자신감을 바탕으로 시위대는 궁극적인 목표가 중국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하는 것에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회사원 호포콴씨는 “중국 반환 이후 홍콩인들의 자유는 갈수록 악화돼 왔다”며 “아무리 많은 시민이 시위에 참가해도 베이징 정부는 꿈쩍도 안할 것이고, 그만큼 미래가 불투명하지만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고 말했다.

취재를 끝내고 홍콩과 대륙을 가르는 100m 남짓의 도보교를 건너 선전으로 돌아왔을 때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선전 기업 비야디의 전기 택시가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도심은 평화로웠다. 관련 정보가 철저히 통제되는 가운데 시위는 홍콩을 오가는 이들을 통해 풍문으로만 전해졌다. 이를 들은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공기처럼 호흡하는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홍콩인들의 반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애국이 중요한 덕목인 중국에서 일부는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까불면 ‘선전시 홍콩구’로 편입시켜 버리는 수가 있다”는 농담에는 뼈가 있었다.

많은 중국인들에게 홍콩은 치욕적인 제국주의 침략의 산물이다. 정치체제와 관련된 홍콩인들의 다른 시각 역시 제국주의 지배의 때를 다 벗지 못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일국양제(一國兩制) 이상으로 간극이 큰 중국과 홍콩 사이의 일국양시(一國兩視·하나의 국가 두 개의 시각)다.

두 시각 사이의 모순은 언제든 파국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홍콩 행정장관 관저 건너편에는 중국군의 홍콩 본부 건물이 있다. 관저 진입을 시도한 1일에도 인민해방군을 상징하는 붉은별은 어두워져 가는 하늘 아래 홍콩 도심과 시위대를 내려다봤다. 대대급 이상이라는 홍콩 주둔 중국군은 베이징 정부의 인내가 바닥나는 날 건물을 나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확인시켜 줄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홍콩인들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했다. 대학생 스텔라 펑씨는 “다른 나라들이 홍콩을 잊을 때 중국 정부는 마음 놓고 홍콩을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변화도 필요하다. 중국 체제를 바라보는 홍콩인들의 시각은 한국을 비롯한 많은 선진 국가의 시선과 다르지 않다. 보다 투명하고 개방된 방향으로 체제를 개혁해 일국양시의 모순을 허무려는 노력은 중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호감도를 높이는 결과로도 이어질 것이다.

홍콩·선전=노경목 특파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