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30일 청와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북한의 비핵화, 한·미 동맹 강화 방안 등을 깊이 있게 논의했다. 이날 약 98분 동안 진행된 두 정상 간 만남은 2017년 6월 첫 회동 이후 여덟 번째다. 트럼프 대통령 방한은 2017년 11월 이후 약 19개월 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청와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확대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양 정상은 이날 굳건한 한·미 동맹을 재확인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청와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확대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양 정상은 이날 굳건한 한·미 동맹을 재확인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트럼프 “서두르면 반드시 문제 생겨”

문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2년 전만 해도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전쟁 공포가 있었던 한반도지만 지금은 그런 공포가 많이 줄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피스 메이커(peace maker)’ 역할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기 전에는 저와 김 위원장 사이에 많은 분노가 있었다”며 “(하지만) 양자 간에 케미스트리가 있어서 지난해 싱가포르 회담이 이뤄진 뒤에는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다만 “서두르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대북 제재 완화를) 서두르지는 않겠다”고 덧붙였다. 김정은과의 회동과 상관없이 비핵화 성과가 날 때까지 대북 제재를 완화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상회담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두 정상은 비핵화에 따른 제재 완화 수위를 두고 미묘한 시각차를 보였다.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와 제재 완화 간 상관관계를 묻는 질문에 문 대통령은 “영변 핵단지가 진정성 있게 완전하게 폐기되면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의 실질적 입구라고 판단된다”며 “그런 조치들이 진정성 있게 실행되면 국제 사회가 제재 완화를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판문점 회동과 관련 “이는 하나의 단계”라며 “중요한 단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아마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이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날 정상회담에서 미국 측 참석자들은 비무장지대(DMZ)에서의 남·북·미 정상 간 회동을 앞두고 기대를 보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보좌관은 “역사적인 자리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길 기대하며 북한에도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 백악관 내 대표적인 대북 ‘매파’로 꼽히는 존 볼턴 안보보좌관은 “유례없는 경험이며 역사적으로 없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오늘의 만남을 김 위원장이 받아들인 것은 그 자체로도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김정은과 케미 잘 맞아…제재완화는 서두르지 않을 것"
굳건한 한·미 동맹 강조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전례없는 한·미 동맹’을 수차례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한국, 한·미 동맹은 지금 더욱 굳건한 동맹을 자랑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양국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한·미 동맹은 전례 없이 굳건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볼턴 보좌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등을 호명하며 “양국 정상뿐 아니라 이런 참모 차원에서도 한·미 관계가 굳건함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자리에서 세 번에 걸쳐 ‘전례 없이 굳건한 한·미 동맹’을 언급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발언에는 다목적 포석이 깔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우선 한국 내 보수층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한·미 동맹 약화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겠다는 것이다. 또 한국의 방위비 분담 증액을 겨냥해 한국 내 반대 여론을 희석시키기 위한 의도가 숨어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날 오전 열린 국내 주요 기업인 초청 간담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4만2000명의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고 중요한 일을 해내고 있다”며 방위비 분담 증액 문제를 우회적으로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한·미 동맹이 갈수록 위대한 동맹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양국이 노력 중인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가 성공하면 한·미 동맹은 그야말로 위대한 동맹으로 빛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및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내용을 트럼프 대통령과 공유했다. 문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이 전해준 말의 공통점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체제) 보장”이라고 전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