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중국, 일본 등을 거론하며 호르무즈 해협에서 각 국이 자국 유조선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미국이 세계 최대 에너지 생산국이 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미국은 그 해협에 있을 필요조차 없다고 했습니다. 미국이 더 이상 ‘공짜로’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거명하진 않았지만 한국도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큽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윗을 통해 “중국은 석유의 91%를 그 해협에서 얻고, 일본은 62%(를 얻고 있으며), 많은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러면 왜 우리는 다른 나라들의 선로를 보상 없이 보호하고 있는가”라며 “이들 모든 국가는 항상 위험한 여정이었던 곳에서 자국 선박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트윗에선 “미국이 이제 막 세계 어느 곳에서도 가장 큰 에너지 생산국이 됐다는 점에서 우리는 거기에 있을 필요조차 없다”고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중국, 일본 등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원유를 실어나르는 주요 국가들이 일종의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는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한국 등을 겨냥해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했왔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논리를 적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은 그동안 호르무즈 해협에서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해왔습니다. 항공모함 등 군사력을 파견해 호르무즈 해협에서 항행의 자유를 보장해왔습니다. 이는 무엇보다 과거 미국 스스로 원유 수입의 상당부분을 중동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해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1970년대 1,2차 오일 쇼크를 거치면서 중동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졌습니다.

美 '호르무즈 보호비' 걷나…트럼프, 中·日에 "유조선 직접 보호하라"[주용석의 워싱턴인사이드]
하지만 셰일혁명 덕분에 미국 내에서 원유·가스 생산이 늘어나고, 미국이 에너지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미국 내에선 ‘미국이 더 이상 막대한 돈을 들여가며 중동의 원유 수송로를 안전하게 지켜야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 이제 막 세계 어느 곳에서도 가장 큰 에너지 생산국이 됐다는 점에서 우리는 거기에 있을 필요조차 없다”고 한 말은 이런 점에서 의미심장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각 국이 알아서 자국 유조선을 보호하던지, 아니면 미국이 유조선의 안전을 지켜주는 대가를 내라’고 압박할 수도 있습니다. 일종의 ‘호르무즈 해협 보호비’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NATO에 대해 그동안 해왔던 언급들과 맥을 같이 한다”며 “그는 동맹국들이 방위에 더 많은 돈을 쓸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습니다.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지난 16일 CBS 방송의 ‘페이스 더 네이션’에 출연해 주말 사이 여러 외국 지도자들과 통화했다고 밝히면서 “전 세계가 뭉쳐야 한다”고 국제 공조를 강조했습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중국과 한국, 일본을 거론하며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다. 우리는 항행의 자유를 항상 지킨다. 우리는 그(호르무즈) 해협이 계속 열려있게 하는데 깊은 관심이 있는 국가들을 확대, 우리가 이 일을 해나가는데 도울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이 지역에 대한 원유 의존도가 높은 국가 등을 대상으로 호르무즈 해협에서 안전한 항해를 보장하기 위한 국제 공조 방안을 짜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최대 원유 수출로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이라크 등 중동 산유국의 원유 수출이 대부분 이곳을 통해 이뤄집니다. 하루 원유 수송량은 1700만 배럴로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30%에 달합니다. 해협의 가장 좁은 폭은 34㎞에 불과합니다. 이란은 이 중동에서 미국과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다’고 위협하곤 합니다. 최근엔 호르무즈 해협 부근의 오만해에서 유조선 피격 사건이 두 차례 발생한데 이어 미군의 정찰용 드론이 이란군에 격추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