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13일(현지시간) 중동 호르무즈해협 인근 오만만에서 발생한 유조선 두 척에 대한 공격이 이란 소행이라고 지목했다. 미군은 이란혁명수비대 경비정이 일본 유조선에 접근해 미(未)폭발 기뢰를 제거하는 영상을 증거로 공개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은 워싱턴DC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 정부는 이란이 유조선 공격에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 외무부는 14일(현지시간)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 정상회담했다고 밝혔다.두 국가 정상은 이날 키르기스스탄에서 열린 중국 주도의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했다.SCO 정상회의 참석은 예정된 일이지만 공교롭게 전날 오만해에서 발생한 유조선 피격 사건과 관련해 미국이 즉시 이란 혁명수비대를 공격의 주체로 지목한 직후라는 점에서 '반미 진영'을 대표하는 두 정상의 만남은 이목을 끌었다.이란 대통령실은 로하니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미정부의 이란과 중국에 대한 압박은 아시아 전체는 물론 전 세계를 지배하려는 속셈 탓이다"라며 "미국의 일방주의에 맞선 이란과 중국의 저항이 전 세계에 이익이 된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또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추진에 지리적으로 요충지인 이란이 기꺼이 중요한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덧붙였다.이에 시 주석은 "중국은 이란과 전략적 관계를 계속 발전시킬 것"이라고 화답하고 "미국의 일방적인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탈퇴가 중동에서 긴장이 고조한 주요 원인이다"라고 비판했다.로하니 대통령은 이날 SCO 정상회의에서 "지난 2년간 미정부는 그들의 경제, 금융, 군사력을 이용해 국제 사회의 모든 규율과 구조를 혼란케 했다"라면서 "이는 중동과 전 세계의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했다"라고 연설했다.미국과 '무역 전쟁' 중인 중국도 SCO 회원국을 상대로 투자와 경제 지원을 앞세워 우군을 확보하는 데 공을 기울였다./연합뉴스
세계 원유의 3분의 1가량이 통과하는 중동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오만만을 지나던 유조선 두 척의 피격으로 국제 유가가 요동치고 있다. 유조선 운임과 보험료도 급등하고 있다. 중동 정세가 악화되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뛸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으며, 최악의 경우 원유 공급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이란 제재 이후 두 번째 유조선 공격13일 오후(현지시간) 호르무즈해협 인근 오만만에서 항해하던 두 척의 유조선에 대한 공격이 발생했다. 노르웨이 유조선은 큰불이 났으며 침몰 위험이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일본 유조선도 선체에 심각한 손상이 발생해 운항을 중단했다.이번에 유조선 공격이 발생한 곳은 호르무즈해협과 맞닿아 있다.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등 걸프 산유국은 하루 1800만 배럴의 원유 중 대부분을 이 해협을 통해 보낸다. 이번 공격은 지난 5월 12일 유조선 4척에 대한 공격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달 공격은 배가 잠시 멈추는 수준이었지만, 이번 피격은 검은 연기가 치솟고 선원들이 긴급히 탈출할 정도로 피해가 컸다. 이번 피격 사건은 미국과 이란 간 갈등을 수습해보겠다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란을 방문한 시기에 벌어져 충격이 더 크다.요동친 국제 유가국제 유가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4월 중순 이후 하락세를 보였다. 하락폭은 20%를 웃돌았다.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는 4월 23일 배럴당 66.33달러에서 이달 1일 51.02달러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오만만에서 유조선 공격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나오자 13일 장중 한때 52.80달러까지 치솟았다. 순식간에 3.5% 치솟은 것이다. 브렌트유는 장중 한때 4달러 이상 오르기도 했다.하지만 국제 유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오름폭이 줄어들었다. WTI는 14일 배럴당 52.3~52.4달러까지 소폭 하락했다. 시장 참가자들은 미국과 이란 간 갈등 등 중동 정세가 최악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단기적인 유조선 습격 사건보다도 미·중 무역전쟁과 글로벌 경기 둔화, 미국산 셰일오일 생산 확대 등으로 유가가 오르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더 많다.하지만 미국이 유조선 습격사건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한 만큼 미국이 군사보복에 나서거나 하는 등 최악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는 분석도 나온다. 헤지펀드 어게인캐피털의 존 킬더프 파트너는 “유조선 피격 전까지는 유가가 배럴당 50달러로 향했지만 중동 긴장이 격화하면 배럴당 100달러가 될 것이란 예측도 있다”고 말했다.보험료는 벌써부터 치솟아호르무즈해협 인근에서 잇따라 벌어진 유조선 공격으로 인해 유조선 용선료와 보험료가 뛰고 있다. 운송 보험은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 유조선 2척이 피격당한 뒤 크기와 화물에 따라 5~15%의 보험료가 인상됐다.유조선 운임도 크게 오를 기세다. 선주들이 위험이 높아진 호르무즈해협 운항을 꺼리고 있어서다. 미국 뉴욕에 있는 카라자스마린어드바이저의 바실 카라자스 최고경영자(CEO)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유조선 운임은 크게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원유 수송에도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1990년대 걸프전 때도 유조선 보험료와 운송료가 급등했다.한국 해운업체에도 초비상이 걸렸다. 호르무즈해협은 한국 해운회사들이 운영하는 유조선의 70% 이상이 다니는 곳이다. SK해운은 19척의 유조선을 운영 중이며, 장금상선 계열사인 시노코페트로케미컬이 10척,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상선이 5척씩 보유하고 있다. 유조선을 포함해 한 달 평균 40척의 한국 선박이 이곳을 통과한다. 이 해협이 전쟁 등으로 봉쇄된다면 정유·석유화학 산업은 물론 국내 산업 기반이 흔들릴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뉴욕=김현석 특파원/강현우 기자 realist@hankyung.com
미국은 13일(현지시간) 오만만에서 발생한 두 척의 유조선 피격사건이 이란 소행이라고 즉각 지목했다. 특히 중동을 담당하는 미군 중부사령부는 오만만에서 피격당한 일본 유조선 ‘고쿠카 커레이저스’ 관련 영상을 자세한 설명과 함께 공개하고 이번 공격이 이란혁명수비대(IRGC) 소행임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주장했다.미군이 공개한 영상엔 10명 안팎을 태운 한 경비정이 고쿠카 커레이저스 측면에 접근해 배에서 불상의 물체를 떼어내는 모습이 담겨 있다. 빌 어번 미군 중부사령부 대변인은 “현지시간 오후 4시10분 이란혁명수비대 경비정이 고쿠카 커레이저스에 접근했고 미폭발 기뢰를 제거했다”며 “미국은 중동에서 새로운 갈등을 일으킬 용의가 없으나, 언제든 국가 이익을 방어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미국이 바로 증거를 내놓은 것은 이례적이다. 미국은 지난달 12일 아랍에미리트(UAE) 영해에서 발생한 유조선 공격에 대해서도 이란을 배후로 지목했으나 그간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29일 UAE 아부다비에서 “역내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증거를 봤든 안 봤든간에 이란의 공격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얘기했다.이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은 워싱턴DC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 정부는 이란이 유조선 공격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평가한다”며 “작전 수행에 필요한 전문성과 무기, 정보 수준 등을 고려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란은 이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선박을 공격했다”며 “이번 공격은 지난 40년간 이란이 미국과 미국 동맹국을 겨냥해 벌인 공격의 가장 최근 사례일 뿐”이라고 덧붙였다.이란은 미국의 의혹 제기를 즉각 부인하고 이번 사건이 미국 등의 공작이라며 맞불을 놨다. 호세인 아미르 압돌라히언 이란의회 외교위원회 특별고문은 “원유 수출 불안을 일으킨 주요 용의자는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이스라엘 모사드”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테러가 일어난 시점을 따져보면 ‘매우 의심스럽다’는 말도 부족할 정도”라며 “이란 최고지도자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협력을 논의하던 중 일본 관련 유조선이 공격당했다”고 주장했다. 알리 라비에이 이란 정부 대변인은 “중동 모든 국가는 역내 불안을 조성해 이득을 취하는 자들이 친 덫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