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집권 보수당 당대표 경선 1차 투표에서 ‘영국의 트럼프’로 불리는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사진)이 압도적인 표차로 1위를 차지했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영국은 집권당 대표가 총리를 맡기 때문에 존슨 전 장관이 테리사 메이에 이어 영국 총리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BBC 등에 따르면 13일(현지시간) 치러진 보수당 경선 1차 투표에서 존슨 전 장관은 313명의 보수당 의원으로부터 114표를 얻었다. 2위인 제러미 헌트 외무장관(43표)의 세 배 가까운 표를 획득했다.

차기 총리의 고지에 한 발짝 더 올라선 존슨 전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여러 면에서 닮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국 언론들은 “부유한 배경을 가졌고 금발머리에 우파 정책을 옹호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을 연결시킨다. 걸핏하면 논란이 되는 ‘막말’과 ‘스캔들’, 예측할 수 없는 행동 등도 닮은꼴로 여겨진다.

그가 총리 후보 0순위로 꼽히는 이유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마무리 지을 인물로 대체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존슨 전 장관은 2016년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할 당시 국민투표를 찬성으로 이끈 ‘유럽연합(EU) 탈퇴파’의 리더다. 이 때문에 메이 총리 내각에서 첫 외무장관을 맡았지만 EU와의 끈을 놓지 못하는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계획에 반발해 2년 만에 사표를 냈다.

이번 경선에서도 ‘브렉시트 지연은 패배를 의미한다’는 선거구호를 내세우며 예정된 10월 31일까지 반드시 브렉시트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존슨 전 장관을 보며 EU 협상 관계자들은 긴장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훌륭한 총리감”이라고 치켜세우며 대놓고 지지하기도 했다.

경제 정책 공약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처럼 ‘감세’를 강조하고 있다. 그는 “법인세와 소득세를 낮춰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며 “소득세 최고세율 40%가 적용되는 기준점을 연소득 5만파운드(약 7500만원)에서 8만파운드(약 1억2000만원)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완고한 보수주의 성향에도 존슨 전 장관의 이미지는 영국인들에게 의외로 친근하게 박혀 있다. 의원 시절 헝클어진 금발 더벅머리에 배낭을 멘 채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는 런던시장으로 재임하던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와이어를 타고 허공을 날아다니는 퍼포먼스로 주목받기도 했다. 시장 시절 런던의 자전거 인프라 확장에 힘쓰면서 런던 공공자전거가 한때 시민들 사이에서 ‘보리스’로 불리기도 했다.

일각에선 이런 이미지조차 계산된 정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존슨 전 장관의 배경만 보면 그는 전형적인 ‘중산층 엘리트’이기 때문이다. 그는 부친이 EU 의원을 지낸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해 명문 사립학교인 이튼칼리지와 옥스퍼드대를 졸업했다.

2001년 정계에 입문하기 전까진 언론계에서 기자, 칼럼니스트로 일하며 정치 분석가로 인기를 얻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지만 거짓 인터뷰를 인용해 쫓겨난 뒤 텔레그래프 벨기에 특파원, 스펙테이터 편집국장 등을 지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