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대치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미국이 톈안먼 민주화운동 30주년을 맞아 중국을 이례적으로 성토하자 중국은 미국 관광 주의보를 내렸다. 중국의 미국 관광 주의보는 사실상 미국 관광을 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3일(현지시간) 성명에서 “(1989년 6월 4일 톈안먼 민주화 운동 이후) 수십 년간 미국은 중국이 국제 시스템에 편입하면서 더 개방적이고 관대한 사회가 될 것으로 희망했다”며 “하지만 이런 희망이 내팽개쳐졌다”고 밝혔다. 이어 “일당 체제의 중국은 반대를 용인하지 않으며 이익에 부합하기만 하면 언제든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톈안먼 민주화 운동 당시 사망자와 실종자 수를 규명하고 중국의 자유화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체포된 인사들을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성명은 미국의 외교 수장 명의로 나온 성명으로는 이례적으로 강도가 셌다. 성명 분량도 A4 용지 한 장가량으로 지난해 성명보다 3배 정도 길었다.

폼페이오 '톈안먼 30년' 인권 유린 비난하자…中, 즉각 美여행 금지령
미 무역대표부(USTR)와 재무부는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미·중 무역협상을 ‘패권국의 횡포’로 규정한 중국의 ‘백서’를 반박했다. USTR과 재무부는 “중국이 백서와 최근 공식성명을 통해 양국 무역협상의 본질과 경과를 왜곡하는 비난전을 추진하려고 한 데 실망했다”고 했다.

미 국방부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고 나섰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지난달 31일 보잉이 제작한 정찰용 드론 ‘스캔이글’ 34대를 4700만달러(약 550억원)에 말레이시아(12대), 인도네시아(8대), 필리핀(8대), 베트남(6대)에 판매하기로 했다.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싸고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주변국에 미국이 ‘감시 수단’을 제공한 것이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4일 정례 브리핑에서 폼페이오 장관의 성명과 관련, “중국의 정치체제를 악랄하게 공격했으며 인권과 종교 상황을 헐뜯었다”고 비난했다.

이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은 중국 외교부와 문화관광부가 미국으로 가는 중국인에게 안전에 주의하라고 당부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외교부는 최근 미국의 기관들이 미국에 가는 중국인들을 출입국 검문 등을 통해 여러 방식으로 힘들게 하고 있다며 주의를 기울이라고 발표했다.

중국 문화관광부도 이날 중국인들의 미국 여행에 대한 안전 주의보를 발령했다. 중국 문화관광부는 최근 미국에서 총격, 절도 사건이 빈발하고 있어 미국 여행을 가는 중국인들은 목적지의 상황을 잘 파악해 안전 예방 의식을 가져야 한다면서 올해 말까지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명목은 미국 내 범죄 발생을 내세웠지만 미·중 무역전쟁이 가열되는 가운데 중국 정부가 나서 갑자기 중국인의 미국 여행에 제동을 건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지도부는 특히 폼페이오 장관이 ‘톈안먼 30주년’과 관련해 성명서를 낸 것에 격앙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최근 미국 비자를 신청하는 중국인들은 지난 5년 동안 어느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이용했는지 등에 관한 명세를 제출해야 하는 등 규정이 강화되자 중국이 반격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중국 교육부는 전날 미국 유학 비자 발급 등에 주의하라는 내용의 ‘2019년 제1호 유학 경계령’을 발동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정연일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