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1000엔권 지폐

일본 1000엔권 지폐

“(일본 정부는)최저 임금 평균시급 1000엔(약 1만894원)을 추진하고 있지만 만약 이런 수준으로 최저임금이 오르면 일본 전역에서 비명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일본상공회의소가 28일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하는 일본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요망서를 후생노동성과 집권 자민당에 제출했습니다. 일본 경제단체가 정부 정책에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오는 7월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일본 당정이 최저임금 인상에 가속도를 내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은 중소기업에 직격탄을 날리고 사업의 생존을 위태롭게 한다”며 정치논리에 휘둘리는 경제정책을 자제해달라고 호소하고 나선 것입니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상공회의소 요망서에서 “3%를 웃도는 최저임금 인상률 목표를 새롭게 설정하는 것에 강하게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에 대한 업계의 어려움과 의견을 솔직하게 담았습니다. 일본상공회의소는 “(기업과 자영업자의)지불 여력이 부족한 가운데 실력 이상의 임금인상을 강요당하고 있다”며 “전국에서 비명소리가 전해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본상공회의소가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정부에 반대 의견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앞서 미무라 아키오 일본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결정하는 각 지방 심의회가 ‘정치적 의도에서 손타쿠(忖度·윗사람 마음을 헤아려 행동하는 것)하고 있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한 바 있습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소기업의 실태에 맞게 했으면 좋겠다”며 “이대로 간다면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만큼 지나치게 높은 최저임금 목표에 관한 논의를 중단했으면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일본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최저임금에 미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임금을 인상했다고 답변하는 기업이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조사 대상 중소기업의 38.4%가 최저임금을 맞추기 위해 임금인상을 강행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2016년 대비 12.6%나 비율이 높아진 것입니다.

하지만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표심 잡기에 골몰하고 있는 일본 정부와 자민당은 이른 시일 내 전국 평균 최저임금(시급)을 1000엔으로 인상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본 여권이 최저임금이 낮은 지역에서 고전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각종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은 최저임금이 낮은 지역에서 부진한 선거 결과를 거뒀습니다.

이에 따라 자민당 최저임금일원화추진의원연맹은 최근 최저임금 인상에 관한 제언을 모아 정부에 요청했습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이시다 노리토시 정조회장도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에게 다음 달 결정되는 정부의 경제재정운용 기본방침에 ‘2020년대 초반까지 최저임금 1000엔 달성’ 목표를 포함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일본 집권당의 지방 출신 의원들은 최저임금 일원화를 추진하는 한편 그에 앞서 우선적으로 현재 874엔(약 9529원)인 전국 평균 최저임금을 2020년대 초까지 1000엔 수준으로 높인다는 계획입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부는 2016년 이후 역대 최대 인상폭인 3%가량씩 전국 평균 최저임금을 올려왔습니다. 최근 2년간 30%가까이 최저임금을 껑충 높인 한국에 비해 인상률이 작아 보이지만 일본의 물가상승률이나 임금 인상률에 비해 최저임금 인상폭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연간 3%씩 최저임금을 올릴 경우 2024년에야 평균 최저임금이 1000엔을 넘는 만큼 그 시기를 3년가량 당겨 2020년대 초 최저임금 시급 평균 1000엔을 달성하자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은 매년 7~8월께학계와 노사 대표가 모인 심의회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논의해 결정합니다. 일본은 현재 지역별, 산업별로 경제 수준과 물가 등을 고려해 다른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2019년 현재 도쿄가 985엔(1만739원)으로 가장 높고 가고시마현이 761엔(약 8297원)으로 가장 낮습니다.

최저임금이 높아져야 한다는 대의명분에는 반대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경제 체력을 무시한 가파른 인상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기 마련입니다. 포퓰리즘을 활용하는 정치권이 최저임금 인상을 주요 ‘무기’로 활용하는 것도 국적에 관계없는 공통적인 모습입니다. 한국의 ‘만원’에 해당하는 ‘시급 1000엔’이라는 목표도 과학적인 근거에 따라 마련된 목표라기 보다는 지폐 1장이라는 감정적으로 다가오는 상징의 힘이 더 큰 듯 합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최저임금 정책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냉철한 경제적 판단에 따라 이뤄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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