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자국 내 정보기술(IT) 인프라 사업자가 인터넷 관련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조달할 때 국가 안보에 위협을 주는지를 점검하는 새로운 규제안을 마련했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중국 정부는 거래를 금지할 방침이다. 중국 첨단기업을 겨냥한 미국의 제재 조치에 맞서 미국 첨단기술 제품의 중국 수출길을 막을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 인터넷 감독기구인 국가인터넷판공실은 지난 24일 홈페이지에 ‘사이버 보안 심사 방법’이란 새 규제안을 발표하면서 다음달 24일까지 공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다고 밝혔다. 규제안에 따르면 사업자들은 새 부품 및 서비스를 도입할 때 반드시 국가기관의 보안 심사를 받아야 한다. 규제안이 시행되면 사실상 중국 정부가 중요 IT 인프라 사업자의 부품 구매에 대한 거부권을 갖게 된다.

이번 조치는 자국산 부품 공급을 중단시켜 중국 기업의 공급망을 와해하려는 미국에 맞대응한 성격이 짙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분석했다. 미국 비영리 싱크탱크인 뉴아메리카의 샘 색스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국가 안보를 근거로 미국 기업 제품 구매를 차단하는 데 새 규제를 이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공개된 규제 초안에는 ‘중요 IT 인프라 사업자’의 구체적 개념이 명시되지는 않았다. SCMP는 차이나모바일 같은 통신 업체부터 은행, 증권회사 등 금융회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관과 기업이 해당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된 중국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기업인 SMIC는 조만간 상장 폐지를 신청할 예정이라고 CNBC방송이 보도했다. 상하이에 본사를 둔 SMIC는 미국주식예탁증권(ADR) 형태로 뉴욕증시에 상장돼 있으며 홍콩 증시에서도 거래되고 있다.

SMIC는 상장 폐지 이유로 거래량이 적고 상장 유지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전문가들은 미국이 중국 기술기업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자 이를 피하기 위해 내린 결정으로 보고 있다.

SMIC는 지난해 33억달러(약 3조92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기업가치는 54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5년 미국 반도체 회사 퀄컴과 2억8000만달러를 투자해 합작 생산라인을 지었다.

한편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 이후 글로벌 기술 기준을 세우는 여러 단체와의 관계가 끊겨 더 큰 타격을 받게 됐다고 닛케이아시안리뷰가 보도했다. 애플, 퀄컴, 인텔 등이 회원사로 있는 와이파이연맹은 화웨이의 참여를 잠정 제한했다. 퀄컴, HP, 삼성, SK하이닉스, TSMC 등이 회원사로 있으면서 반도체 표준을 세우는 JEDEC도 미국 정부의 제재가 풀릴 때까지 화웨이의 회원 자격을 정지시켰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