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가 미국 기업으로부터 반도체 칩 등 핵심 부품을 살 수 없게 돼 1988년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화웨이와 거래하는 미국 기업들의 피해도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美 핵심부품 차단당한 '화웨이 제국'…창사이래 최대 위기
미 상무부는 16일(현지시간) 화웨이와 68개 계열사를 거래 제한 기업 명단에 올렸다. 이번 조치의 효력은 즉시 발생했다. 하루 전인 지난 15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 정보통신기술 보호를 내세워 화웨이를 겨냥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지난해 화웨이의 전체 매출에서 미국 시장이 차지한 비중은 0.2%밖에 되지 않는다. 통신인프라 분야에서 화웨이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6%였지만 미국을 포함한 북미 시장 점유율은 6%에 불과했다. 미국 정부가 화웨이의 미국 시장 진출을 금지한다고 해도 이에 따른 영향은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 기업의 제품을 살 수 없다면 얘기가 크게 달라진다. 화웨이는 자체 개발한 스마트폰용 중앙처리장치를 최신 제품에 탑재하는 등 기술 독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 기업에 핵심 부품을 의존하고 있다. 지난해 핵심 부품 공급업체 92곳의 명단을 발표했는데 미국 기업이 32곳으로 가장 많았다.

미국 기업이 공급하는 부품의 상당수는 다른 업체로부터는 조달하기가 어렵다. 최악의 경우 핵심 부품 공급 차질로 생산라인이 멈춰 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선 작년 4월 미국 제재로 핵심 부품을 공급받지 못해 도산 위기에 내몰렸던 중국 2위 통신장비업체 ZTE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멍완저우(孟晩舟) 부회장 체포 사태 이후 비상 경영 체제에 들어갔던 화웨이는 이번 미국의 제재로 사실상 ‘전시 경영’ 상태에 돌입했다. 다만 화웨이는 미·중 무역전쟁 속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수개월에서 1년치 부품을 쌓아뒀다고 닛케이아시안리뷰가 소식통을 인용해 17일 보도했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는 미국 기업에도 막대한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화웨이에 스마트폰과 5G(5세대) 통신장비 제조에 필요한 부품 및 소프트웨어를 공급해온 실리콘밸리 기업들에 직격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WSJ에 따르면 화웨이는 지난해 부품 조달 비용 700억달러 중 110억달러를 미국 기업에 썼다. 퀄컴, 브로드컴 등으로부터 통신칩을 공급받았고 인텔, 오라클로부터 기지국 장비나 소프트웨어 등을 사들였다. 퀄컴은 매출의 5%를 화웨이와의 거래에서 거둬들였다.

이 같은 우려에 16일 뉴욕증시에서 퀄컴 주가는 전날보다 4% 하락했다. 브로드컴(-2.3%), 마이크론테크놀로지(-2.9%), 자일링스(-7.3%), 스카이웍스 솔루션즈(-6%) 등의 주가도 줄줄이 떨어졌다.

미국으로부터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는 유럽 동맹국들은 자체적으로 결정을 내리겠다는 입장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미·중 무역 분쟁에 끌려들어갈 필요가 없다”며 “독일의 5G 통신사업에 참여하는 기업은 독일 정부가 정한 기준을 충족하면 된다”고 밝혔다. 제러미 라이트 영국 문화부 장관도 “화웨이와 관련된 정책은 영국의 법과 규정에 의거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강동균/뉴욕=김현석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