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칭더(賴清德) 전 대만 행정원장(사진 오른쪽·59)이 내년 있을 대만 총통선거에서 국민당 후보에 맞설 민진당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당 후보들과의 격차를 좁히면서다. 대만에서는 연금개혁에 대한 반발, 경기불황에 따른 민심이반 등으로 집권당인 민진당의 지지율 하락이 계속되는 가운데 내년 선거에서 제 1 야당인 국민당이 정권을 탈환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한궈위(韓國瑜) 가오슝(高雄) 시장과 ‘대만의 트럼프’ 궈타이밍(郭台銘) 훙하이그룹 창업자 겸 회장 등 국민당의 거물급 후보들에 맞서 그가 정권을 지켜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지난 14일 대만 빈과일보가 여론조사기관 뎬퉁(典通)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라이 전 원장은 한 시장과의 가상 양자대결에서 39.7%의 지지율을 얻어 40.1%의 지지를 받은 한 시장과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였다. 연초부터 여러 매체에서 여러 차례 여론조사를 해왔지만 소숫점대 접전을 벌인 것은 처음이다. 같은 조건의 가상대결에서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사진 왼쪽)이 민진당 후보로 나설 경우 37.4%의 지지율을 얻는 데 그치면서 한 시장보다 5%포인트가량 뒤쳐진 것과 대조적이다. 대만 현지 언론들은 “국민당 후보들의 지나친 친중(親中) 행보에 불안감을 느낀 유권자들이 차이 총통의 대안으로 라이 전 원장을 지지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민진당의 공천을 받을 후보 적합도 지지도 조사에서도 라이 전 원장은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는 30.7%의 지지율을 얻어 25.3%의 차이 총통을 앞질렀다. 6월 이후로 예정된 당내 경선에서도 차이 총통을 누르고 민진당 총통후보로 지명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라이 전 원장은 2살 때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려운 가정형편이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해 ‘수재’ 소리를 들었다. 그는 대만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공보건학 석사 학위를 받아 내과의사가 됐다. 1994년 정계에 입문한 뒤에는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입법위원’ 4선을 거쳤다. 2010년부터는 7년간 타이난시장을 역임했다. 2017년에는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행정원장에 임명됐다가 지난해 11월 지방선거 참패한 책임을 지고 지난 1월 사임했다.

라이 전 원장은 차이 총통보다도 반중(反中) 성향의 정치인으로 알려졌다. ‘주권국가’임을 강조하며 공공연히 ‘대만 독립’을 주장해 왔다. 지난 3월 출마 선언을 할 때도 “대만을 제 2의 홍콩, 제 2의 티벳으로 만들지 않겠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내년 선거를 “중국의 통일공작에 순응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분기점”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민당 후보들이 공언하고 있는 중국과의 평화협정에 대해서도 “대만에게 재난”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때문에 ‘중화인민공화국’ 이외에는 어떤 정부도 불법으로 규정하는 ‘하나의 중국(一個中國)’ 원칙을 고집하는 중국 입장에서는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지난 3월 논평에서 라이 전 원장의 대만 독립 발언을 겨냥해 “중국의 반국가분열법에 근거해 기소해야 한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대만 현지에서도 만약 라이 전 원장이 당선되면 양안관계가 더 악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라이 전 원장이 지렛대로 삼는 것은 일본이다. 정치인이 된 뒤 일본을 여러 차례 찾아 대만과 일본의 연대를 강조해 왔다. 지난 8일부터 5일간 일본을 방문해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전 총리 등 30여명의 일본 주요 정치인들과 회동하는 등 일본 정계와의 강한 유대를 과시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배경 때문에 중국에서는 라이 전 원장이 총통이 되면 동중국해와 대만해협을 기점으로 ‘대중국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는 미·일과 연대를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경계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미·중 무역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유탄을 맞는 대만 기업들이 중국에서 발을 빼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우려는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막상 총통 자리에 오르면 급진적인 정책은 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대만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양안관계가 틀어지면 경기불황이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를 의식한듯 최근 당선 가능성이 가시권에 들어오자 라이 전 원장은 강경한 반중(反中) 이미지를 희석하기 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말 일본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공언해온 ‘대만 독립’과 관련해 “대만이 지금처럼 주권을 가져야 한다는 뜻에서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지난 14일 대만 국립중앙대 대강당에서 열린 강연에서 “총통에 당선되더라도 독립을 선포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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