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미국의 무역정책이 세계무역기구(WTO)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며 날선 비난을 쏟아냈다. 중국은 13일(현지시간) WTO 홈페이지에 게시한 ‘개혁방안’ 보고서에서 “상소기구 위원 임명 지연과 국가 안보를 이유로 내세우는 알루미늄·철강·자동차에 대한 고율의 관세 부과 같은 정책 때문에 WTO가 존재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중국이 600억달러 규모 미국산 제품에 5~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직후 게재됐다. 중국은 보고서에서 미국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상소기구 위원 임명 지연과 국가 안보를 내세운 관세 부과 등은 모두 미국과 관련된 사안이다. 중국 정부는 “WTO의 특정 회원국이 WTO의 승인 없이 일방적이고 임의적인 방식으로 무역장벽을 높이고 수입 관세를 부과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안보 예외 규정 남용과 WTO 규정에 어긋나는 일방적인 무역 조치의 잘못된 사용 및 남용은 규칙에 근거하고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 무역질서에 상당한 타격을 줬다”고 주장했다. 또 이 같은 관행은 개발도상국 등 WTO 회원국의 이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WTO의 권한을 약화시켰다며 “WTO는 유례없는 존립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줄곧 개도국 지위 등과 관련해 미국 주도로 논의되는 WTO 개혁안에 반대해왔다. 미국은 중국 인도 등 경제 규모가 큰 국가가 WTO에서 개도국 지위를 누리면서 관세 등에서 각종 혜택을 받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미·중 무역전쟁이 갈수록 격화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 주도로 추진되는 WTO 개혁 논의에도 반대하는 입장을 드러낸 것이어서 미·중의 힘겨루기는 전선이 더 넓어질 전망이다.

미국은 세계은행이 고소득 국가로 분류한 국가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세계 무역량에서 0.5%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 등은 개도국 우대 적용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WTO 무역 분쟁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는 상소기구는 7인으로 구성되지만, 미국이 WTO 개혁을 명분으로 임기가 끝나 공석인 위원 자리를 채우는 데 반대하면서 현재는 심리가 가능한 최소 인원인 3명만 남아 있다. 미국이 상소기구 위원 선임을 계속 거부하면 올해 12월엔 1명만 남게 돼 상소기구 자체가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