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력 없는 '아웃사이더'
젤렌스키, 현 대통령에 압승
드라마 속 대통령 연기로 인기
우크라이나에서 대통령을 연기했던 코미디언 겸 배우가 진짜 대통령이 됐다. 기성 정치권의 부패와 무능으로 경제사정이 나빠지자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정치 경력이 전무한 ‘아웃사이더’에 표를 던졌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21일(현지시간) 치러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코미디언 출신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1)가 페트로 포로셴코 현 대통령(53)을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승리를 확정지었다. 우크라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2일 오전 95%가량 개표된 상황에서 젤렌스키는 73.2% 득표하며 포로셴코 대통령(24.5%)보다 세 배가량 많은 표를 얻었다.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코미디언 젤렌스키를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드라마 ‘국민의 종’이었다. 젤렌스키는 2015년부터 방영된 이 드라마에서 평범한 역사 교사지만 부패한 정치에 염증을 느껴 정치에 뛰어들고,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인물을 연기했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은 이 드라마는 첫 방송 이후 무려 5년 동안 새 시리즈가 제작될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젤렌스키는 드라마 제목에서 이름을 따 ‘국민의 종’이란 정당을 창당하고 지난해 12월 대선에 출마했다.

젤렌스키는 기득권 정치에 변화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을 공략했다. 포로셴코 대통령이 방위산업 비리 스캔들로 부패 혐의를 받고 있는 중에 그는 ‘부패를 뿌리 뽑고 세제를 개혁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또 자신의 친근한 이미지를 앞세워 페이스북, 유튜브 등을 통해 대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경기 악화에 대한 분노도 국민이 정치 신인에 표를 던지게 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동부 분리주의자들과 내전에 한창이던 2014년 경제성장률이 -6.6%로 떨어졌다. 2015년에도 -9.8%까지 떨어졌다가 2016년부터 지난해 연 2~3% 성장률을 회복했다. 그러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여전히 유럽 최빈국 수준인 2656달러(2017년)에 머물고 있다. 연간 물가상승률은 10%에 달한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12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39억달러(약 4조4400억원)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유권자들은 젤렌스키가 러시아가 병합한 크림반도를 반환받고,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부(돈바스 지역)에서 내전을 끝내기를 기대하고 있다. 젤렌스키는 이를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더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노선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젤렌스키는 대선 과정에서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다만 정치 경험이 전무하고 지지 기반도 없다 보니 대통령직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일각에선 젤렌스키가 이스라엘로 망명한 반정부 성향 우크라이나 금융재벌 이고르 콜로모이스키의 꼭두각시 대선 후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콜로모이스키가 자신이 소유한 우크라이나 최대 은행 프리바트방크를 포로셴코 정부가 국유화한 데 대해 보복하기 위해 젤렌스키를 대선 후보로 내세웠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제과기업 ‘로셴’의 성공으로 억만장자에 오른 포로셴코와 재벌들끼리의 싸움이라는 해석도 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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