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억弗 채권 발행' 아람코
글로벌 금융시장 데뷔

설립 86년 만에 베일 벗어
13.8兆 채권 발행에 투자자 열광
'실세' 무함마드 왕세자의 작품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 사우디 아람코가 지난 10일 120억달러(약 13조8000억원) 규모의 달러표시 채권 발행을 마무리하며 글로벌 금융시장에 데뷔했다. 이 과정에서 시장 참가자들은 여러 차례 충격에 빠졌다. 첫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 아람코의 영업이익 때문이었다. 설립 86년 만에 공개된 이 회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240억달러(약 254조원)에 달했다. 세계 1위로 꼽히던 애플(818억달러)의 2.7배다. 또 아람코 채권을 사겠다고 몰려든 자금에도 놀랐다. 역대 최대인 1000억달러에 이르렀다.

채권시장의 상식도 뒤집혔다. 통상 투자자들은 기업보다 국가를 더 신뢰하는 만큼 회사채 금리가 국채 금리보다 높다. 하지만 아람코는 사우디 국채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했다. 아람코 채권 덕분에 사우디 국채 금리가 내려가는 기이한 현상까지 벌어졌다.

사우디 세금 70% 내는 아람코…이익 규모에 월街도 '경악'

세계서 가장 수익성 높은 회사

아람코는 사우디 왕실이 100% 지분을 보유한 비상장 회사다. 1933년 5월 사우디 정부와 미국 스탠더드오일이 함께 설립했다. 스탠더드오일은 ‘석유왕’ 록펠러가 세운 회사다. 아람코는 1980년 사우디 왕실이 지분 전량을 인수하면서 국영화됐다. 사우디에 매장된 2665억배럴의 원유를 독점 생산한다. 사우디에서 원유를 생산하는 곳은 아람코 외엔 없다. 본사는 사우디 동부의 다란에 있고 직원 수는 7만여 명이다.

그동안 아람코의 재무 정보는 국가 기밀처럼 철저히 가려졌다. 첫 달러화 표시 채권을 발행하기 위해 지난 1일 470쪽짜리 투자설명서를 내놓으며 처음으로 공개됐다. 아람코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세계 1위 애플, 2위 삼성전자(776억달러), 3위 로열더치쉘(533억달러)의 이익을 모두 더한 것보다 많았다.

매출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5000억달러 정도일 것으로 국제 금융계는 추정하고 있다. 아람코의 작년 세후 순이익은 1111억달러(약 126조원)였다. 역시 애플의 세후 순이익(595억3000만달러)을 압도했다.

사우디 재정의 70% 담당

사우디 재정은 전체 70% 이상을 아람코가 내는 세금으로 충당한다. 배당금·로열티 등을 더하면 90% 가까이 이 회사에 의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람코의 이익은 세계 최대 규모 유전에서 나온다. 아람코는 2016년 기준 하루 1235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했다. 세계 원유 생산량의 12%를 넘는다. 하루 1000만배럴 이상 생산하는 석유회사는 아람코밖에 없다. 세계 최대 육상 유전으로 알려진 가와르 유전과 세계 최대 해저 유전 사파니야 유전이 모두 아람코 소유다.

하지만 유전이 있는 모든 석유회사가 돈을 잘 버는 건 아니다. 전문성, 자본력, 장기적인 투자 전략 등을 갖추지 못하면 적자를 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베네수엘라의 국영 석유기업 PDVSA다. 베네수엘라의 원유 매장량은 3022억배럴로, 사우디의 원유 매장량(약 2665억배럴)을 앞지른다. 하지만 PDVSA는 베네수엘라 정부의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과 방만한 경영, 고급 기술인력 부재 등으로 하루 원유 생산량이 120만~140만배럴 수준에 불과하다.

젊은 왕세자가 좌지우지

사우디의 최고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왕세자도 투자자들의 주목 대상이었다. 이번 채권 발행도 무함마드 왕세자의 작품이라는 분석이다. 아람코 이사회 의장인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아라비아 산업에너지·광물부(옛 석유부) 장관은 무함마드 왕세자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올해 34세인 무함마드 왕세자는 2015년 1월 아버지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이 왕위에 오른 뒤 정부 내 요직인 경제개발위원장, 국방장관 등을 맡았다. 2016년 석유 의존적인 사우디 경제를 현대적으로 바꾸겠다는 목표를 담은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아람코는 채권 발행으로 얻은 자금으로 중동 최대 석유화학기업인 사빅(SABIC)의 지분 70%를 사우디 국부펀드 공공투자펀드(PIF)로부터 사들일 예정이다. 사우디 리야드 주식시장에 상장된 사빅은 지난 11일 종가 기준 시총이 777억달러다.

사빅 인수는 아람코와 사우디 경제의 사업 다각화 방안 중 하나다. 아람코는 원유 생산과 더불어 천연가스 개발, 원유 정제 등의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대부분의 수익은 여전히 원유 생산에서 나온다. 사빅 인수를 통해 석유 생산에서 가공까지 통합적인 사업구조를 갖추겠다는 설명이다. 사빅 인수 후엔 10년간 천연가스 개발과 화학사업에 5000억달러(약 569조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2016년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사우디는 20년 내 석유에만 의존하지 않는 나라가 될 것”이라며 “아람코를 석유·가스 회사에서 에너지산업 회사로 탈바꿈시켜 다양한 신사업으로 투자 영역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여전히 부족한 투자 정보

아람코는 2021년 기업공개(IPO)를 할 예정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한때 아람코의 기업가치를 2조5000억달러(약 2900조원)로 추정했다. 세계 시가총액 1위인 애플(6099억달러)의 4배 이상이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IPO다.

하지만 이번 채권 발행을 계기로 투자자들의 평가도 냉정해지고 있다. 저유가 때문에 IPO 규모가 1조5000억달러 수준에 그칠 것이란 진단도 나오고 있다. 여전히 투명성이 부족하고 장기 경영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도 높아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채권 발행으로 아람코의 IPO를 기다리고 있는 잠재적 투자자들은 아람코가 돈을 잘 번다는 것은 확인했다”며 “하지만 투자자들은 벌어들인 돈을 어디에 쓰는지 투자부터 재정 지출까지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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