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일 취임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의 친(親)시장주의 정책 추진 기대로 랠리를 이어가던 브라질 금융시장이 최근 들어 꺾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18일 사상 처음으로 100,000포인트를 넘겼던 브라질 증시 보베스파지수는 이후 2주 동안 5%가량 내려앉았다. 강세를 나타내던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지난 3월 한 달 동안 4.8% 하락했다.

브라질 금융시장에 이상징후가 나타난 배경에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연금개혁이 좌초할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다. 연금개혁이 당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내건 △세금감면 △규제완화 △공기업 민영화 △외국인 투자촉진 △복지 속도 조절 등의 개혁 정책이 어찌 될지 알 수 없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브라질에선 연금개혁이 다른 개혁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가늠케 하는 ‘리트머스 종이’로 여겨지고 있다. 영국 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은 브라질 연금개혁이 1년 안에 처리되지 못하면 투자자들이 등을 돌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親시장 개혁 좌초하나…요동치는 브라질 금융시장
브라질 공적연금 어떻길래

브라질의 공적연금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이 집권한 2003년부터 본격 확대됐다. 경제 호황으로 석유와 철광석값이 올라 재정수입이 늘자 연금 혜택을 늘렸다. 남성은 55세부터 퇴직 전 임금의 70%, 여성은 50세부터 53%를 평생 연금으로 받는다. 공무원은 한술 더 떠 퇴직 전 봉급의 100%를 매달 받는다. 65세(여성은 60세)에 은퇴하는 경우 직전 15년 동안 근무한 기록만 있으면 연금 수급 자격이 된다. 한국을 포함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대부분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소득대체율 40% 안팎으로 지급하고 있는 것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후하다.

뉴욕타임스는 “평일 오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코파카바나 해변에 나가 보면 은퇴자들이 은빛 머리를 휘날리며 여유롭게 조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마치) 브라질이 파산을 향해 달려가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연금이 이처럼 방만하게 운영되다 보니 브라질 경제 최대 골칫거리로 자리잡게 됐다. 지난해 브라질의 연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금 지출액 비율은 12%로 OECD 평균치 8%를 크게 웃돌았다. 전체 정부 예산의 42%가 매년 연금 지급액으로 쓰이고 있다. 이로 인한 정부 재정적자는 매년 평균 100억달러(약 11조원)씩 늘어나고 있다. 세계은행(WB)은 고령화를 원인으로 2030년부터는 브라질 정부 예산을 다 쏟아부어도 연금과 사회복지비를 충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매년 불어나는 연금 지출액으로 인해 정부 재정 건전성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해 브라질의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은 76.7%로 2017년 말 74.1%보다 2.6%포인트 높아졌다.

연금개혁 내건 보우소나루

더 큰 문제는 조만간 브라질의 연금 수급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데 있다. 2050년이 되면 브라질의 노령 인구는 근로자의 두 배가 될 것으로 추산됐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고령화 추세가 더욱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세계 경제학자 사이에서 브라질의 연금 제도가 ‘곧 터질 수밖에 없는 시한폭탄’이라는 관측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더 내고, 덜 받고, 늦게 받고’를 핵심으로 한 개혁안을 내걸었다. 연금 납입 최소 의무 기간은 현행 15년에서 20년으로 늘리고, 연금 수급액을 약 15%씩 하향 조정하며, 과도기를 거쳐 최종적으로 연금 수급 가능 퇴직 연령 하한을 남성은 65세, 여성은 62세로 늦추자고 제시했다.

파울루 게지스 경제장관은 연금개혁에 성공할 경우 향후 10년간 3000억달러(약 340조원)에 달하는 국가 재정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국민과 의회 설득이 관건

문제는 설득이다. 브라질은 국민의 연금 수급에 대한 권리를 헌법에 명시하고 있어 개혁을 위해서는 의회의 5분의 3 이상으로부터 동의를 얻어내야 한다. 이전 정권이 연금개혁에 실패한 것도 개헌의 문턱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금개혁에 찬성하는 브라질 국민은 45% 정도지만 반대 세력도 44%가량으로 나타나고 있다. 브라질 6개 대형 노조는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추진하고 나섰다. 연금개혁에 영향을 받는 경찰과 군인 사이에서도 정부에 반기를 드는 세력이 생겨나고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만사를 제쳐둔 채 연금개혁에 총력을 다하는 중이다. 지난 2월 직접 의회에 출석해 개혁안을 제출한 데 이어 연일 의회와 국민을 상대로 설득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일부터는 연이틀간 10여 개 중도 정당의 대표들을 잇달아 만나면서 연금개혁에 대한 지지를 요청했다.

시장에서는 아직까지 브라질의 연금개혁 성공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연금개혁안이 결국 통과될 것이란 기대가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브라질을 포함한 남미에선 포퓰리즘의 풍토가 강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의회를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란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