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부유세를 도입했던 유럽 국가들이 최근 몇 년 새 잇따라 제도를 폐지 또는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유층이 아예 해외로 이주하거나 재산을 국외로 옮기는가 하면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자산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폭등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반면 2020년 대선을 앞둔 미국에선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민주당)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무소속) 등이 경쟁적으로 부유세 도입안을 내놓고 있다.
美 정가 달구는 부유세…'원조' 유럽선 폐지·축소
28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1995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부유세를 도입한 국가는 유럽을 중심으로 15개국에 달했으나 현재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스위스 노르웨이 스페인 벨기에 등 4개국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유세는 부의 재분배를 목적으로 일정 규모를 초과하는 개인 재산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과 개인 소득에 대한 과세와는 구별된다.

독일과 프랑스, 스웨덴,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10여 개국은 부유세를 폐지했다. 주된 이유는 제도를 시행해 보니 사회적 손실이 더 컸기 때문이다. 당장 세수 증가에 비해 세금을 징수하는 데도 과도한 직·간접 비용이 들었다.

프랑스는 가장 최근인 2017년 이 같은 이유로 부유세를 폐지했다. 에릭 피셰 프랑스 KEDGE 경영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정부가 부유세를 부과한 지난 10년간 연평균 36억유로(약 4조5900억원)의 추가 세수가 확보됐지만, 매년 약 70억유로의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켰다.

납세 대상자들이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거나 아예 국적을 포기하면서 초래된 과세 기반 약화가 가장 큰 사회적 손실이었다고 피셰 교수는 분석했다. 2017년 이전 10년간 프랑스에서 이탈한 자본과 프랑스 기업들이 세율이 낮은 외국에 투자한 자본 등을 합치면 금액이 약 2000억유로에 달했다.

일부 국가에선 과세 비용을 줄이기 위해 금융자산에 집중적으로 과세한 결과 자산가격 왜곡 현상이 초래됐다. 독일은 자산가들이 주식과 채권 대신 시세에 비해 공시가격이 낮은 부동산으로 자금을 대거 이동시키면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해 뒤늦게 부유세를 도입한 벨기에는 50만유로가 넘는 금융계좌만 과세 대상으로 삼았다”며 “벨기에 정부는 조만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것을 목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유세를 시행 중인 노르웨이와 스페인은 부작용이 나타나자 과세 대상을 대폭 축소했다. 이들 국가가 실거주 주택 한 채에 대해선 부유세 대상에서 제외한 결과, 집값이 급등하고 주택 매매는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레그 라이서슨 미국 공정성장센터 조세정책실장은 “부유층이 조세회피 수단으로 주택을 활용하는 것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스페인은 결국 부유세 부과 기준점을 대폭 높여 초고액 자산가에 한해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고, 노르웨이 역시 부유세의 비중을 대폭 줄였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