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 생선" 의심…보잉 "문제없다" 정부·의회 설득
작년 로비자금 172억원…정계 유명인사 영입해 '전방위 입김'
美의회, 보잉 '셀프 안전인증' 조사…'로비와의 전쟁' 예고
추락사고로 세계 항공업계를 불안하게 한 미국 보잉사 여객기에 적용된 이른바 '셀프 안전인증' 논란에 대해 미국 의회가 조사에 착수했다.

논란이 된 제도가 로비의 결과라는 지적이 있는 데다가 사고를 수습하기 위한 로비도 따로 진행되는 것으로 전해져 조사가 목표대로 이뤄질지 주목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국 의회는 연방항공청(FAA)이 안전성 승인 과정에서 일부 점검을 항공기 제작사에 위임한 '자가 인증' 절차가 합당한지 조사에 나섰다.

FAA는 2005년부터 기관지정인증 프로그램(ODA)을 통해 FAA가 담당하는 안전인증 절차의 특정 부분을 항공기 제작업체가 스스로 점검할 수 있도록 해왔다.

이런 절차는 보잉의 737 맥스8 기종이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에 이어 이달 10일 에티오피아에서 추락 사고를 일으키면서 도마 위에 올랐다.

사고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자동 실속방지 시스템이 안전인증 과정에서 제대로 된 검사를 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실속 방지 시스템이란 기체가 난기류 등 상황에서 양력을 잃고 추락하는 것을 자동으로 막아주는 장치인데, 인도네시아와 에티오피아 추락사고의 원인으로 이 장치의 오작동이 거론되고 있다.

FAA는 성명을 통해 "기업들이 자신을 감시하고 비행기를 자가 인증하도록 허락한 적이 없다"며 "위임제도는 1920년대부터 안전 시스템에서 중요한 부분이었고, 위임제도 없이는 미국의 항공 시스템의 성공은 요원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보잉도 성명을 내고 "2017년 3월 9일 737맥스에 대해 FAA의 최종 승인을 받는 데 있어 지름길은 없었다"며 "FAA는 자동 실속방지 시스템을 점검했고 모든 인증, 규제 요건을 만족한다고 결론 내렸다"고 주장했다.

'셀프 안전인증'으로 불리는 제도가 항공기 안전도를 높이기 위한 제도였으며 점검을 위임받은 보잉 직원들도 FAA를 대신해 중립적으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회에서는 보잉 신형 여객기가 거푸 두 차례 유사한 참사를 일으킨 만큼 이런 주장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리처드 블루먼솔(민주·코네티컷) 상원의원은 지난 22일 대니얼 엘웰 FAA 청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것"이라고 ODA 프로그램을 비판했다.

의회 조사가 시작됨에 따라 거대기업인 보잉의 막강한 로비가 이번에도 작동할지 주목을 받는다.

WSJ은 에티오피아에서 보잉 737 맥스 8이 추락한 이후 보잉이 정부와 접선하는 로비 라인을 가동했다고 보도했다.

보잉은 임원들을 투입해 이번 사태에 대한 정부 대책에 가장 큰 입김을 넣을 수 있는 관리들을 접촉해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로비 대상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잉 경영진의 제안에 따라 사고 기종의 운항중단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보잉은 연방 정부를 움직여 자사 이익을 보호할 목적으로 사내 로비스트 30여명, 사외 로비업체 16곳을 가동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사고 이후 행정부뿐만 아니라 의회에 대한 로비도 한창인 것으로 전해졌다.

WSJ은 보잉이 자사 이익을 대변하는 이른바 '직접 옹호자들'로 분류되는 의원들에게 기대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잉은 차세대 우주선 개발부터 연방 정부의 과세규정, 군사장비 조달까지 자사와 관련된 정책 전반에 로비를 통해 영향을 미치려고 노력해왔다.

WP에 따르면 보잉은 미국 행정부 전반과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 수십년간 노력을 기울여왔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인 케네스 두버스타인,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딸인 캐럴라인 케네디를 이사로 영입한 것은 그런 활동으로 일부로 지적된다.

WSJ은 의회의 조사 표적인 ODA 프로그램 또한 보잉이 공격적인 로비 활동 후에 획득한 제도라고 지적했다.

WP는 인도네시아 추락사고 4주 전 의회가 보잉에 훨씬 더 강한 자가 안전인증 권한을 부여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법안은 의회에서 큰 표 차의 지지 속에 통과됐고 트럼프 대통령도 이견 없이 서명했다.

WP는 이런 사례에서 보잉이 워싱턴 정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잘 드러난다고 보도했다.

미국 연방 정부의 로비 기록에 따르면 지난해 신형 비행기 모델의 인증을 위해 보잉 직원 10명 이상이 대정부 로비에 매달린 것으로 나타났다.

중립적인 비영리 연구기관인 CRP(Center for Responsive Politics)에 따르면 보잉이 작년에 지출한 로비 자금은 1천510만 달러(약 172억원)로 개별 기업들 가운데 네 번째를 기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