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中과 일대일로 MOU로 경제효과 기대…부작용 우려도

과거 동서양을 잇는 통로 역할을 하던 실크로드를 통해 활발히 교류하면서 각각 서양과 동양의 중심 축 역할을 해온 이탈리아와 중국이 '뉴 실크로드'라 불리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를 매개로 광범위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할 채비를 하고 있다.

양국은 23일(현지시간) 로마에서 이탈리아를 국빈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 등 두 나라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자리한 가운데 일대일로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

24일 일메사제로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양국이 체결한 일대일로 양해각서에는 에너지, 항만, 관광, 은행, 농업 등 산업 분야뿐 아니라 문화재, 교육, 항공우주 등 민간과 정부를 망라한 분야에서 협력을 규정한 총 29개 조항이 담겼다.

민간 기업과 공기업 등 이탈리아 기업과 중국 사업체들 사이의 경제 협력과 관련한 조항이 10개, 나머지 19개는 정부 간 협력에 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선 중국 측은 동유럽을 잇는 요충지인 이탈리아 북동부 트리에스테항과 북서부 제노바항의 투자와 개발 등 눈독을 들여온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성과를 얻었다.

중국은 슬로베니아와의 접경지역에 위치한 트리에스테항, 프랑스와 인접한 제노바항이 유럽으로 중국 상품을 들여오는 관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이 항구들을 독일 함부르크나 네덜란드 로테르담 수준의 물동량을 처리할 수 있는 항구로 개발하길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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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회사들도 이번 MOU로 실질적인 사업 기회를 얻게 됐다.

토목회사 다니엘리는 중국이 추진하는 11억 유로(약 1조4천억원) 규모의 아제르바이잔 철강발전소 건설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에너지업체 안살도(Ansaldo)는 중국회사에 2천500만 유로(약 320억원) 규모의 가스발전 설비를 납품하기로 하는 등 이날 체결된 MOU의 경제 가치는 총 25억 유로(약 3조2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탈리아의 오렌지와 소고기 등 농축산물의 중국 수출도 가시화됐다.

이탈리아 측이 중국의 대형 전자상거래 업체인 쑤닝과 손잡고 이탈리아의 생활 방식을 중국에 소개하는 통합 플랫폼 개발을 위해 협력한다는 조항도 MOU에 포함됐다.

양측은 또한 벤처기업과 온라인 상거래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교육과 연구개발, 관광 등에서 상호 교류를 확대하기로 뜻을 모았다.

아울러, 양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자매 결연을 추진하는 등 문화적인 협력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이탈리아와 중국은 각각 보유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에서 세계 1, 2위를 달리고 있다.

미국이 유럽에 중국 네트워크 장비업체 화웨이 사용을 배제하라는 압박을 가하는 가운데 이뤄진 이날 서명식에서는 사안의 민감성을 반영해 통신 분야에서 협력한다는 내용은 빠졌다.

시진핑 주석의 이탈리아 방문 기간에 양국 축구협회 관계자들도 만나 중국에서 인기가 높은 이탈리아 프로축구 리그 세리에A의 일부 경기를 중국에서 개최하고, 세리에A 경기 관련 콘텐츠를 중국 미디어 그룹에 제공하는 방안도 협의했다.

이탈리아 최대 뉴스통신사인 ANSA와 관영 신화통신의 대표도 로마에서 만나 이탈리아 독자를 위해 이탈리아어로 중국 관련 소식을 전하는 것을 골자로 한 협약을 체결했다.

디 마이오 부총리는 이날 MOU 서명식 후 연 기자회견에서 "'메이드 인 이탈리아'로 통칭되는 이탈리아 상품과 이탈리아 회사, 이탈리아 전체가 승리한 날"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일대일로 참여가 이탈리아 경제를 위해 큰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오늘 서명한 계약의 미래의 잠재적인 가치는 200억 유로(약 25조원)에 달한다"고 추산하는 한편, 우선적인 목표는 작년에 176억 유로(22조6천억원)에 달한 중국과의 무역적자를 가능한 한 빨리 줄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예상대로 일대일로 참여가 이탈리아에 이득이 될지, 중국에 더 큰 이익을 안겨줄지, 혹은 양측의 희망처럼 두 나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중국 사업체들이 이탈리아 내에서 값싼 자국 노동력을 이용해 생산한 물건들을 유통함으로써, 세계적으로 고품질을 인정받고 있는 기존 '메이드 인 이탤리'(Made in Italy) 제품들을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일대일로가 이런 현상을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당장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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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업체들이 중국에서 값싼 원재료를 더욱 쉽게 들여올 경우 이탈리아가 패션, 섬유, 수공업 등의 분야에서 쌓아온 고품질 신화가 빠르게 왜곡될 수 있다고 BBC는 지적했다.

한편, 이탈리아의 유수 기업들이 자본을 앞세운 중국의 손아귀에 넘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존재한다.

이미 밀라노에 근거지를 둔 두 명문 축구단 인터밀란과 AC밀란은 각각 2016년, 2017년에 중국 기업들에 잇따라 매각됐고, 이탈리아 타이어 업체인 피렐리의 지분 45%는 중국 자본이 소유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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