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구글·아마존·애플 등
IT기업 쪼개자는 주장 쏟아져

앤디 케슬러 <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 >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20세기 초에 활동한 문필가 H L 멘켄은 청교도주의를 ‘지금 누군가 어디선가 행복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애플을 쪼개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멘켄의 청교도주의에 대한 정의를 다시 떠올려 본다.

팀 우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는 ‘큰 것은 나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 2월 미국기업연구소(AEI)에서 “우리는 페이스북이 성장하고 돈을 벌게 허용했고 그들은 굉장한 성공을 거뒀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 분야에서 독점기업에 압력을 가해 회사를 쪼개는 문제에 관해 우리는 좋은 트랙 레코드(기존 경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페이스북은 이미 커졌고 이제는 다른 회사에 기회가 주어져야 할 차례라는 취지였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도 대형 기술기업을 분할해 강한 규제를 받는 플랫폼으로 바꾸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미국 남서부를 방문했을 때 “독점기업들이 독점을 통해 누리는 이익 규모는 작아질 것”이라며 짐짓 안 됐다는 제스처를 취해 군중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질시에 기반한 정치는 포퓰리스트들에겐 짜여진 각본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셔먼반독점법은 두 가지 방식의 사업을 제한하고 있다. 하나는 반(反)경쟁적인 합의(담합)이고 다른 하나는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다. 법관들은 기업이 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소비자 후생 관점에서 판단한다. 경쟁이 제한돼 소비자들이 피해를 봤는지를 따진다는 뜻이다. 독점기업으로부터 누리는 소비자 후생은 불법이 아니다. 반독점법은 기업 규모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반독점법이 어떻든 페이스북이 거느린 인스타그램과 와츠앱(메신저앱)을 페이스북에서 떼어 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아마존(전자상거래업체)에서 홀푸드(유기농식품업체)를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구글이 2007년에 사들인 더블클릭을 분사해야 한다는 것도 그렇다. 애플에서 앱스토어를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지금 스포티파이가 유럽연합(EU)에 요구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다만 이런 문제들에서 소비자 후생이 위협받고 있다는 증거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런 거대 기술기업들이 아무런 문제점도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구글의 검색 결과는 구글 관련 사이트를 다른 사이트보다 앞세워 보여준다. 페이스북은 개인정보를 팔지 않기로 해놓고 판매했다. 미국 연방통상위원회(FTC)는 이 문제와 관련해 페이스북에 상당한 규모의 벌금을 매겼다. 그렇다면 이런 압력을 계속 가하면 될 일이다.

어떤 기업을 분할하라거나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경쟁사가 정부를 이용해 그들의 이익을 관철하려고 할 때 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이런 행위는 경쟁을 촉진하는 게 아니라 혁신을 가로막는다.

1982년 벨시스템(통신업체)이 분할(AT&T가 반독점법 적용을 받아 8개 회사로 쪼개진 일)된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해로운 독점이었고 정부가 분할을 명령했다. 하지만 그냥 두었어도 시장이 결국에는 그 일을 해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통신업계는 재통합을 거쳐 AT&T와 버라이즌으로 재편됐고 경쟁을 통해 새롭게 성장하는 사업모델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반면에 IBM은 한 번도 분할된 적이 없다. 1980년대 IBM은 궁극적인 플랫폼이었다. 반도체를 만들었고 메인보드도 만들었고 디스크드라이브 역시 만들었으며 이들을 소프트웨어와 함께 하나의 박스(컴퓨터 외장재)에 넣어 팔았다. 이 분야 매출이 절반을 차지했고 이익 비중은 90%였다. 하지만 반독점법은 필요하지 않았다. 경영진은 스스로 각 분야의 관련성을 줄여 살아남는 법을 찾아냈다.

기술 진보는 연속적인 것이다. 반독점법이 규율하는 것은 하나의 순간이다. 혁신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갑자기 튀어나올 수 있다는 것을 무시하고 그 하나의 순간만을 가지고 판단한다. 새로운 기업은 궁극적으로 지금 있는 거대 기술기업을 뒤에 남겨두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워런 의원이 문제삼은 4대 기술기업은 연구개발(R&D)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회사들이기도 하다. 4대 기업의 지난해 R&D 비용은 모두 600억달러다. 여기에 마이크로소프트와 삼성전자를 포함하면 850억달러에 이른다.

그러나 KPMG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지난해 벤처캐피털이 투자한 돈은 모두 2540억달러에 달한다. 새로운 경쟁의 싹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해마다 봄이 되면 수선화가 피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우버와 리프트는 애플 덕분에 (앱의 형태로) 사업할 수 있게 됐지만 애플이 우버와 리프트를 발명해낸 것은 아니다. 에어비앤비는 구글이나 아마존이 제공하는 것보다 뛰어난 방식으로 여행지를 검색하고 온라인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

아마존프라임은 넷플릭스와 경쟁하는 중이다. 그리고 아마존이 사들인 자회사 홀푸드는 소매업을 재창조하려 하고 있다. 그런 것이 반(反)경쟁적인가. 오히려 경쟁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정부 주도로 독점을 하고 있고 그래서 실제로는 높은 가격을 받아서 소비자 후생을 해치고 있는 분야도 많다. 유선통신과 무선통신, 헬스케어, 프로스포츠, 자동차딜러십, 공립학교 같은 분야들이다. 이들에 대한 독점을 깨뜨려야 한다는 주장은 왜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인가.

워런 의원은 더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가 기술기업들의 경제적 권력에 대한 것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들이 갖고 있는 정치적 권력에 대해서도 우려해야만 한다”고 했다.

만약 멘켄이 이 시대에 살아 있다면 그는 포퓰리즘적 청교도주의를 이렇게 다시 정의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누군가 어디선가 성공할지 모른다는 데 대한 끊임없는 두려움’이라고.

원제 : Warren’s populist puritanism

정리=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column of the week] 대선주자 워런의 '포퓰리즘적 청교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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