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 플랫폼 기업들이 거센 외풍에 시달리고 있다. 유럽연합(EU)은 구글, 아마존, 애플 등 IT 기업을 대상으로 반(反)독점 조사를 벌이고 있다. 미국에선 이들 기업의 과거 인수합병(M&A)을 조사해 합병 기업을 강제 분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각국 정치권이 실리콘밸리에 분노를 돌리는 최근의 상황이 마치 글로벌 금융위기 후 반(反)월가 시위가 쏟아져 나왔던 때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대규모 과징금에 기업분할 압박…外風에 시달리는 실리콘밸리
EU, IT 공룡 정조준

EU는 20일(현지시간) 미국 검색업체 구글이 온라인 검색광고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는 이유로 14억9000만유로(약 1조9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구글은 ‘애드센스 포 서치’ 서비스를 통해 검색광고와 웹사이트를 연결해주면서 제3자 웹사이트에 경쟁사의 검색광고가 들어가지 않도록 한다는 조항을 계약에 포함시켰다. 유럽 검색광고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구글이 자사의 영향력을 이용해 경쟁사의 영업을 가로막았다는 뜻이다.

구글이 EU의 반독점 제재를 받은 것은 최근 2년 새 벌써 세 번째다. 세 차례에 걸쳐 총 82억5000만유로(약 10조7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EU 경쟁당국은 2017년 6월 구글이 온라인 쇼핑검색에서 자사 사이트가 우선 검색되도록 했다는 이유로 24억2000만유로의 과징금을 물렸다. 작년 7월엔 구글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운영체제(OS)의 시장 지배력을 남용했다며 43억4000만유로를 때렸다.

EU 경쟁당국은 아마존, 애플의 시장 지배력 남용도 조사하고 있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앞서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아마존이 자사의 플랫폼을 이용하는 다른 판매업자의 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해 불공정 경쟁을 조장했다는 혐의를 조사하고 있고, 꽤 진전됐다”고 밝혔다.

EU는 세계 1위 음원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업체 스포티파이가 애플 앱스토어의 독점적 지위 남용 문제를 항의한 것을 계기로 해당 사안도 검토하고 있다. 스포티파이는 애플이 앱스토어에 등록된 앱(응용프로그램)에서 이뤄지는 내부 결제에 30%의 수수료를 물리는 행위가 부당하다고 EU 경쟁당국에 이의를 제기했다.

정치권 압박에 ‘백기’

실리콘밸리의 IT 기업을 겨냥하는 것은 EU만이 아니다. 미국 CNN에 따르면 영국과 터키를 비롯해 각국 정부가 구글 등의 시장 지배력을 조사하고 있다. 터키 정부는 구글의 검색시장 지배력을, 영국 정부는 온라인 광고 시장을 조사할 계획임을 밝혔다. 영국 로펌 DMH스탈라드의 조너선 콤튼 파트너는 “많은 규제 당국이 구글과 페이스북을 ‘통제 불능’이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지난달 26일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거대 IT 기업의 과거 M&A가 시장 경쟁과 소비자 권익을 해쳤는지 조사하는 전담반(TF)을 꾸렸다.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선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이들 기업을 해체하는 반독점 규제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우기까지 했다.

워런 의원이 제안한 규제가 시행되면 아마존의 홀푸드(유기농식품 유통업체),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사진공유업체), 구글 모기업 알파벳의 더블클릭(디지털 광고업체) 인수 등은 무산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보수 진영이라고 다르진 않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가 보수주의자, 공화당을 차별한다며 좌(左)편향됐다고 몰아세웠다.

정치권의 전방위 압박에 백기를 드는 실리콘밸리 기업이 늘고 있다. 기업이 해체될 수도 있고, 이용자 이탈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페이스북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콘텐츠 공유에서 개인·소규모 그룹 간 소통으로 사업의 중심축을 옮기겠다고 밝혔다. 구글은 유럽에서 안드로이드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플레이스토어, 크롬 브라우저 등 검색엔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아마존은 외부 입점업체(제3자 판매)에 최저가 요구 조항을 없애기로 했다. CNN은 “변화가 단기간에 이뤄지기는 어렵지만 IT 기업들이 규제당국과 대중의 반감에서 벗어나 살아남으려면 눈에 띄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