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거칠어진 일본, 對한국 외교정책 왜 달라졌나
지난해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에서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하고 일본 기업에 대한 자산압류가 추진되자 일본 정치인들의 거친 발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국민 정서와 외교적 마찰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한 표현도 넘쳐난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지난 12일 일본 기업의 자산압류와 관련해 관세보복과 송금·비자발급 정지 등을 언급했다. 지난해 아베 신조 총리는 대법원 판결을 두고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는 표현을 썼다. 올초 시정연설에선 한국 관련 언급을 통째로 빼기도 했다. 고노 다로 외무상은 지난달 문희상 국회의장의 ‘일왕 사죄’ 발언이 나온 뒤 “무례하다. 말조심하라”는 극언까지 내뱉었다. 일본의 대(對)한국 외교 전략이 바뀐 것 아닌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베, 재팬패싱 돌파·지지층 결집 위해 연일 '초강경 대응'

보복 전략 선택한 일본

일본에선 최근 한·일 갈등과 관련해 한국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 한국이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갈등을 촉발한 것이라는 얘기까지 한다. 한국이 정부 간 합의인 ‘위안부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고 대법원 판결로 한·일 외교관계의 근간인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 의미를 상실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관함식 욱일기 논란과 함께 국회의원단의 독도 방문이 있었고 대통령 신년기자회견과 3·1절 축사 등에서 일본에 대한 비판을 쏟아낸 것도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 와중에 문 의장이 ‘일왕은 전범의 아들’이라고 말하면서 일본 극우·보수 세력뿐만 아니라 일반 여론도 급속히 냉각됐다. 아베 총리로선 보수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성사시킨 위안부 합의가 무산되자 개인적 감정까지 더해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일본에선 한국이 ‘일본 때리기’에 나서고 있는 만큼 ‘사안별로 보복 전략(tit for tat)’을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여당이 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해 이 같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측면도 있다. 다나카 히데토미 조부대 비즈니스정보학과 교수는 “일본도 ‘보복’을 선택하는 게 최적의 전략”이라며 “경제보복 조치가 단기적으로는 일본에 충격을 주더라도 장기적으론 이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늘어나는 전후 정치인

일본 정치권의 대다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났다. 아베 총리가 1954년생, 고노 외무상은 1963년생이다. 침략 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기억이 없다. 이에 따라 한국에 대한 부채의식도,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이 잘못했다’는 인식도 상대적으로 옅다. 외교가의 한 관계자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주요 정치인은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죄의식이 있어 한국을 배려한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사태를 더 악화시킨 것은 한·일 정치권에서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할 물밑접촉 네트워크가 사라졌다는 데 있다. 한국에는 김종필·박태준 전 총리에 비견할 만한 ‘일본통’ 정치인이 없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가 중국대사처럼 정권 실세도 아닌 데다 일본어도 못하는 비외교관 출신을 첫 주일대사로 임명하면서 일본의 실망이 컸고 양국의 접촉 기회도 줄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의 G2 콤플렉스

한·일 관계가 경색된 근본 원인으로 일본 사회의 콤플렉스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2000년대 이후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위상이 하락하면서 ‘강한 일본’ 재건을 위해 공격적인 외교를 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본은 2009년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중국에 뒤졌고 2011년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해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겪었다. ‘국력이 쇠한 것 아니냐’는 탄식이 나올 무렵 중국은 센카쿠 영토분쟁을 일으켰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일왕 사죄’ 발언을 했고 독도도 전격 방문했다.

당시 일본에선 한국과 중국이 일본이 약해진 틈을 타 공세적으로 나온 것이라는 피해의식이 컸다. 이종원 와세다대 한국학연구소장은 “일본이 정치·경제적으로 수세에 몰리면서 민족주의 성향이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정치·경제적으로 ‘한 수 아래’로 여겼던 한국이 급성장한 데 대한 반발이라는 해석도 있다. 외교가 고위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한·일 관계를 국력이 대등한 독일-프랑스 관계로 보지만 일본에선 식민지배 역사가 있는 영국-아일랜드 관계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불편한 ‘재팬 패싱’

일본의 강경 대응에는 북한 문제도 적잖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이 끝난 뒤 아베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한 뒤 기자들에게 “일본과 미국이 긴밀히 협력해나가겠다”고 했다. 1차 회담 때와 달리 한·미·일 연계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해 남북한 정상회담과 1차 미·북 정상회담 이후 이어진 ‘재팬 패싱(일본 소외)’ 국면을 벗어나기 위해 역으로 ‘코리아 패싱(한국 소외)’을 꾀하는 것이란 시각도 있다.

아베 총리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앞세워 지지율을 다지는 재미를 봤다. 초기엔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면서 북핵 대응에서도 적잖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남북, 미·북 대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일본은 주변으로 밀려났고 일본인 납치문제 등도 미국에 의존하는 상황이 됐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 해결과 관련해 한국에 끌려다니기보다 독자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대(對)한국 외교 기조가 강경해졌다는 분석이다. 일본 외교의 핵심 축인 미국과의 공조를 공고히 하면서, 한·미·일 3국 관계에선 미국을 좀 더 일본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강경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큰 그림 그리는 아베 총리

주요국 정상 가운데 집권 기간이 상대적으로 긴 아베 총리는 글로벌 외교 무대에서 일본 위상 제고에 힘을 쏟고 있다. 한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맡았던 미국과 중국·러시아 간 중재자 역할을 이어받으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문제는 일본이 구상하는 국제무대의 ‘큰 그림’이 한국의 외교 전략과 충돌한다는 데 있다. 북핵문제 해결에서 주변으로 밀렸을 뿐만 아니라 대중국 전략에서도 한국은 걸림돌이다. 일본은 미국과 손잡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펴고 있다. 호주, 영국, 인도 등과 함께 중국을 포위하는 형국이다. 중국 협조를 토대로 한반도 안정을 꾀하려는 한국의 외교 전략은 일본으로선 불편할 수 있다. 아베 총리는 과거에도 외교 현안이 생겼을 때 강경책을 선호했다. 한·일 대립이 오래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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