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유럽 부동산 시장에 투자하는 한국 기업과 기관들이 증가세입니다. 그간 유럽 부동산을 좌지우지하던 중국 자본이 자국 경기 둔화와 당국의 해외투자 규제 강화로 유럽에서 발을 빼면서 이른바 ‘코리안 머니’가 빈 자리를 속속들이 채우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2일 “유럽 고급 부동산 시장에 둥지 트는 한국 자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FT는 “올 여름 영국 런던 신사옥에 입주를 시작하는 골드만삭스 직원들 대부분은 이 건물의 새로운 주인이 한국 국민연금공단(NPS)이라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라며 운을 뗐습니다. FT에 따르면 NPS는 건물 건설이 한창 진행되던 지난 8월 12억파운드(약 1조8000억원)를 들여 매입을 진행했습니다.

FT는 이 같이 최근 유럽 고급 부동산 시장에서 한국 자본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례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부동산 컨설팅 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투자자들의 유럽 내 상업용 부동산 투자액은 사상 최대인 73억유로(약 9조3700억원)를 기록했습니다. 5년 전에 비해 여섯 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한국 자본은 유독 영국 부동산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유럽 상업용 부동산 투자 전체의 40% 이상이 영국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한국 투자자들은 지난해 런던 부동산에 23억파운드(약 3조4500억원)를 투자했습니다. 홍콩에 투자한 25억파운드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였습니다.

NPS의 골드만삭스 신사옥 매입 외에도 사례가 많습니다. KB증권이 주축이 된 컨소시엄은 런던 소재 콘도미니엄을 인수하는 데 약 4000억원을 썼습니다.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은 지난해 말 런던 소재 공유오피스 회사 위워크가 입주한 건물과 영국 교육청이 임차한 빌딩을 각각 2900억원과 4200억원에 인수했습니다. 한국투자증권도 3000억원을 들여 런던 건물주 대열에 동참했습니다.

한 기업이 여러 채를 사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래에셋대우는 지난해 3월 NH투자증권과 공동으로 미국 사모펀드 블랙스톤이 보유하고 있던 런던 금융지구 IG 그룹 홀딩스 본사 건물을 3800억원에 매입한 데 이어 5월에는 블랙스톤으로부터 런던 중심가의 사무용 건물을 5000억가량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달 초에는 프랑스 파리 상업지구인 라데팡스의 랜드마크인 마중가타워 인수전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습니다.

FT는 그간 글로벌 부동산 시장에서 ‘큰 손’ 역할을 도맡아 하던 중국 자본이 빠져나간 자리를 한국 투자자들이 메우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지난 2015년 한국 정부가 기업의 해외 투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면서 한국인들의 유럽 랜드마크 빌딩 쇼핑이 활황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의 국내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기관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된 것도 원인이라는 견해도 제시했습니다.

최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앞두고 파운드화 가치가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 한국 기업들의 영국 부동산 투자를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파운드화 환율이 오른 사이 런던 부동산을 싼 값에 사들일 기회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계 부동산 컨설팅 업체 세빌스코리아의 윤재원 투자자문 담당 과장은 “런던은 유동성이 풍부하고 프랑크푸르트나 파리 등 다른 유럽 주요 도시에 비해 부동산이 저평가 돼 있어 선호 대상이 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앞으로 한동안 한국 기업들이 지난해 처럼 영국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어질 것 같습니다. 브렉시트에 따른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최희남 한국투자공사 사장은 FT와의 인터뷰에서 “점진적으로 해외 투자를 늘려나갈 계획”이라면서도 “그러나 브렉시트 우려가 해소될 때까지 영국에 대한 투자를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방식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FT는 향후 프랑스 파리의 부동산 시장에 국제 자금이 몰릴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