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지난 3일과 5일 연이어 개막하며 막이 오른 중국 양회(兩會)가 10일로 반환점을 돌았다. 중국의 최대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는 오는 15일 전인대 폐막과 함께 2주간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올해 양회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 경기가 급속히 둔화하는 와중에 열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양회를 통해 중국 지도부의 고민과 함께 정부 정책 방향 등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미소가 사라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표정과 염색하지 않은 흰머리, 중국인들에게 강한 중국을 부각하지 않으려는 분위기 등 이번 양회에선 예년과 다른 장면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리스크 관리' 수년간 강조하던 中, '성장 우선주의'로 유턴
리스크 방지 대신 성장 우선주의

전문가들과 외신은 올해 전인대가 지난해와 가장 달라진 점으로 중국 정책이 ‘성장 우선주의’로 회귀했다는 것을 꼽았다. 안정적인 성장을 유지해온 작년까지만 해도 중국 정부는 부채 축소를 통한 금융위기 예방과 산업구조 개혁 심화를 통한 질적 성장을 강조했다. 통화정책에서도 구조조정을 위해 풀린 돈을 거둬들이는 ‘긴축’으로 선회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올해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전인대 업무보고에선 이런 표현이 완전히 사라졌다. 중국 정부는 올해 성장률 목표로 6~6.5%를 제시했지만 전문가들은 6% 성장도 장담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중국 지도부도 내심 ‘6% 성장률 지키기’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는 분위기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충격파를 고려해 중국 정부는 올해 4조1500억위안(약 700조원) 규모의 공격적인 경기 부양 패키지를 내놨다. 재정지출 확대와 완화적 통화정책, 그리고 대대적인 감세 정책을 망라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작년 2.6%에서 2.8%로 높여 잡았다. 재정적자 비율 목표가 상향 조정된 것은 3년 만이다. 세수보다 2조7600억위안(약 466조원) 정도를 더 쓰겠다는 얘기다. 지방정부의 특수목적 채권도 2조1500억위안어치를 발행해 철도, 도로 등 인프라 건설에 투입하기로 했다. 세금과 사회보험료 경감 등을 통해 기업과 개인의 부담을 2조위안 줄여주기로 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올해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 규모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4조위안)을 사실상 뛰어넘는다”며 “경기가 갈수록 침체하면서 민심이 동요하자 성장 우선주의로 유턴했다”고 지적했다.

흔들리는 시진핑 리더십

이번 양회를 계기로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황제’에 비견되던 시 주석의 리더십에 금이 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시 주석이 경기 둔화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상 압박 등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중국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양회에선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을 없애는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시 주석을 찬양하는 ‘시비어천가’가 가득했다. 리 총리를 비롯한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한목소리로 “시 주석의 핵심적 지위를 결연히 수호해야 한다”고 외쳤다.

하지만 올해엔 시 주석의 실책에 대한 불만이 적잖이 터져나오고 있다. 정협 위원인 러우지웨이 전 재정부 장관은 중국 정부의 첨단산업 육성책인 ‘중국제조 2025’에 대해 “미국의 공격 대상만 됐을 뿐 실제로 이룬 것은 거의 없다”며 “납세자의 돈만 낭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저명 과학자이자 정협 위원인 웨이잉제는 시 주석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해외 고급인재 유치 프로그램인 ‘천인(千人)계획’을 비판했다. 그는 “첨단기술 인재를 중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과도한 계획이 중국인 유학생이 해외 지식재산권이나 국가 기밀을 훔치려 한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중국인 유학생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천인계획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전인대 비공개회의에선 최고지도부 안에서도 시 주석의 리더십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시 주석이 정치적 통제만 더욱 강화하고 있다”며 “오히려 통제 강화가 공산당과 정부조직 내부의 불만을 키우고 있다”고 전했다.

당내 분위기와 미국을 의식한 듯 시 주석은 이번 양회에서 그동안 강조해온 ‘중국몽(中國夢: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강군 건설’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중국 지도부가 20년간 고수해온 검은 머리 염색 전통이 깨진 것도 주목받고 있다. 시 주석은 듬성듬성 흰머리가 보이는 모습을 카메라에 노출해 화제가 됐다. 전문가들은 시 주석이 경륜과 지혜를 갖춘 나이든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흰머리를 일부러 노출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시 주석의 리더십 훼손을 막으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양회 기간 시 주석의 어록을 소개하는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은 인공지능(AI) 여성 앵커를 내세워 양회 소식을 전하고 래퍼와 함께 양회를 홍보하는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관영 영자지인 차이나데일리는 양회의 역사와 관련한 퀴즈 코너를 개설했다. 홍콩 명보는 “이번 양회를 계기로 시 주석의 절대 권력이 안팎에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모습”이라고 했다.

더 강화된 중국식 체제 선전

중국은 전인대 마지막날 외국인 투자자 권리 보호 등을 위해 외상투자법(外商投資法)을 제정할 예정이다. 이 법은 미국의 압박에 떠밀린 측면이 강하지만 세계 각국의 완전한 시장 개방 요구를 마냥 외면하기 힘든 중국 정부의 고민도 담겨 있다.

공산당이 이뤄낸 발전 업적을 알리는 체제 선전에는 그 어느 때보다 열을 올리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과 경기 둔화로 양회를 앞두고 공산당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자 이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신장위구르자치구 등에서 이슬람 민족 탄압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중국식 민주주의와 관련한 홍보도 강화하고 있다.

관영 CCTV의 영어 채널인 중국국제텔레비전(CGTN)과 신화통신의 동영상 서비스 등 영어 매체를 활용해 외국인을 겨냥한 체제 선전에 힘을 쏟고 있다. CGTN은 전인대 대표의 평균 나이가 54세며, 이들 중 25%가 여성이라고 소개하는 등 각종 통계 자료를 동원해 양회를 외국인에게 적극 홍보하고 있다. 신화통신은 트위터에 올린 동영상에서 “중국이 성공한 주요 원인이 중국의 민주주의 체제 때문이라는 점이 널리 인정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중국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모습을 알려면 양회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홍보 활동에 외국의 누리꾼들과 서방 언론은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영어 매체를 통해 양회를 외부 세계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은 중국 정치 체제에 대한 외국인들의 부정적인 시각을 의식한 행보”라고 해석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