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양대 은행인 코메르츠방크와 도이체방크 상표
두 개의 부실기업을 합치면 우량기업 하나가 탄생하게 되는 걸까요? 독일 정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독일 금융계에서는 조만간 정부가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와 코메르츠방크의 합병을 추진할 것이란 관측이 많습니다. 독일 정부에서는 공식적인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지난달 정부가 발간한 산업 계획 보고서인 ‘국가산업전략 2030’에서 조만간 국가 주도 대형은행이 출범할 것을 시사하는 문구가 발견되면서 합병설은 기정사실화 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주요 외신들은 독일의 양대 은행 합병이 가져올 효과를 분석하며 제각각 견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다지 희망적이진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두 은행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 전망했습니다. 로이터통신은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이라고 했습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한 발 더 나아가 “참으로 끔찍한 생각(A truly terrible idea)”이라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온도차는 있지만 다른 언론들도 대부분 유사한 입장입니다.

도이체방크와 코메르츠방크는 규모 면에서 독일 내 1, 2위를 다투는 양대 사금융 기관입니다. 1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승승장구하던 두 은행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날개 없는 추락을 겪고 있습니다. 당장 주가만 두고 봤을 때 두 은행 모두 지난 11년 간 90%에 달하는 폭락세를 겪었습니다. 도이체방크 주가는 2008년 말 기준 80달러 선에서 현재 8달러를 오가는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사실 부진한 실적을 보이고 있는 유럽 은행은 비단 이 둘뿐만이 아닙니다. 유럽의 경기를 부흥하기 위해서 유럽중앙은행(ECB)이 오랜 기간 저금리를 정책을 시행하고 나서면서 유럽의 많은 은행들이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금리가 낮아지면 은행에 돈을 맡기는 사람은 줄어들게 됩니다. 그럼에도 은행들은 운용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예금 금리를 높여야만 했습니다.

코메르츠방크는 금융위기 직후 해운사들의 과당경쟁으로 발생한 글로벌 해운업계 침체로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침체가 시작되기 직전 해운사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차관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2009년 인수한 드레스너방크의 자산 대부분이 부실 채권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결국 독일 연방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에 이르게 됐습니다. 독일 연방 정부는 현재까지도 코메르츠방크 지분을 15% 소유하며 대주주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이체방크 본사 건물
도이체방크의 경우 문제가 더욱 심각합니다. 각종 불법 스캔들과 잘못된 경영 활동으로 위세가 크게 위축됐습니다. 내부자거래와 자금세탁 혐의로 각국 정부로부터 벌금형을 부과받기도 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16억달러(약 1조80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의도적으로 숨긴 사실이 지난 2월 밝혀져 당국의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로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IB)들이 도산하는 것을 기회로 여기고 투자은행업에 ‘올인’했다가 수익성이 되려 악화하게 된 것도 도이체방크가 부실 은행 반열에 오르게 된 요인입니다. 도이체방크는 한때 그리스 정부에 차관을 제공했다가 큰 손실을 보는 일도 있었습니다.

독일 정부는 두 은행의 합병을 통해 독일에서 새로운 거대 은행을 탄생시키고자 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를 통해 외국 자본의 탈출을 예방하고 유럽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더라도 독일 기업들에 대한 신용 대출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수출 중심의 독일 경제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대형 은행이 필요하다는 명분도 있습니다.

실질적으로는 최근 미국 정부가 대형 은행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면서 미국에서 더 많은 대형 은행이 난립할 것을 우려한 독일 정부가 선제 대응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됩니다. 실제 지난달에는 미국 은행 BB&T가 또 다른 은행인 선트러스트를 합병한다고 밝혀 주목받았습니다. 두 은행이 합치게 되면 단숨에 미국 내 자산 규모 6위 은행의 자리를 꿰차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다른 미국 은행들 사이에서도 합병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독일 정부가 향후 다가올 새로운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대형 은행을 출범시키려 한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독일 정부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유동성이 크게 부족한 상황, 즉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도 미국의 대형 은행들이 줄도산하는 바람에 충분한 자금을 수혈받지 못한 경험이 있습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부터 대형 은행 설립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을 것”이라 분석했습니다.

여러 언론과 기관들이 두 은행의 합병을 반대하고 나선 것은 두 은행의 업무가 여러모로 겹치기 때문입니다. 이들 은행은 모두 투자 업무에 특화된 IB들입니다. 독일 한델스블라트는 “두 은행이 합병할 경우 업무가 중복되는 부분이 많아 구조조정 등에 큰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러면서 “차라리 한때 도이체방크와의 합병설이 나오던 스위스 UBS와 도이체방크를 합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UBS는 개인금융을 많이 다루는 은행인 관계로 도이체방크와 합쳐지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습니다.

독일 정부는 아직까지 합병설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합병이 빠르면 올해 안으로 진행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독일 정부의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가뜩이나 부진을 겪고 있는 유로존 경제에 더 큰 타격을 가하는 요인이 되지는 않을까요? 독일이 어떤 선택을 하든 부디 글로벌 경제에 좋은 영향을 가져다주는 결과가 나타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