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보유국끼리 이틀간 공습을 주고받은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지난달 26일부터 이틀 연속 전투기 교전을 벌이고 지상에선 박격포 공격을 주고받자 로이터통신 등은 이같이 전했다.
3057㎞의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두 나라는 1947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세 차례 전쟁을 치렀다. 하지만 인도 공군이 통제선(LoC)을 넘어 파키스탄 공습에 나선 것은 1971년 이후 처음이다. 1999년 카길 전투 때는 인도, 파키스탄 모두 핵실험에 성공한 뒤라 핵전쟁을 우려한 인도 공군이 통제선을 넘지 않았다.
이번 충돌의 직접적인 원인은 지난달 14일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발생한 파키스탄 반군의 자살폭탄 테러다. 갈등은 고조됐고 군사 충돌로 이어졌다. 문제는 정치적 상황이 카길 전투 때와 다르다는 데 있다.
재선을 노리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취임한 지 1년도 안된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가 정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상대국과의 갈등을 활용할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이 억류 중이던 인도 공군 조종사를 지난 1일 송환하면서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지만 접경지대에서 여전히 포격전이 계속되는 등 불씨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화약고’ 카슈미르 국경 분쟁
인도(힌두교)와 파키스탄(이슬람교)이 종교에 따라 쪼개지면서 분쟁이 시작됐다. 첫 격돌은 1947년 영국이 철수하고 두 나라로 분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카슈미르를 놓고 벌어졌다.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 중국의 경계에 있는 산악지대다. 면적은 약 22만㎢로 한반도와 비슷하다.
주민의 다수가 이슬람교도라서 파키스탄에 편입되길 바랐지만 카슈미르의 당시 영주 마흐라자 하리 싱이 힌두교도였기 때문에 인도에 통치권을 넘기기로 했다. 그러자 그해 10월 파키스탄 지원을 받은 무장 부족집단이 주도인 스리나가르를 침공했다. 이듬해 인도와 파키스탄의 전면전으로 확대됐고 이게 1차 카슈미르 전쟁이다. 1949년 유엔 중재로 휴전했지만, 카슈미르는 파키스탄령(아자드-카슈미르)과 인도령(잠무-카슈미르)으로 분단됐다.
1949년 정한 휴전선은 1972년 인도와 파키스탄 간 ‘심라협정’에 따라 정전 통제선으로 바뀌었다. 지난달 26일 인도 공군은 1971년 이후 처음으로 이 통제선을 넘어 파키스탄을 공습했다. 지난달 14일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공격의 배후로 파키스탄 테러 조직을 지목한 인도는 미라주 전투기 12대를 투입해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에 폭탄을 투하했다. 이에 다음날 파키스탄 공군기는 인도 공군기를 격추했다.
48년 전과 달리 인도와 파키스탄은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카슈미르의 오랜 갈등은 두 나라의 핵무기 개발 경쟁으로 이어졌다. 인도가 1974년 핵실험을 단행하며 핵보유국이 되자 파키스탄도 1998년 실험을 거쳐 핵보유국 선언을 했다. 칸 파키스탄 총리는 지난달 27일 핵전쟁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인도, 파키스탄 어느 쪽도 전략적 요충지인 카슈미르를 포기할 수는 없다. 인도로선 카슈미르 전체를 지배하면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과의 접경 지대로 향하는 문을 확보할 수 있다. 파키스탄이 카슈미르를 차지하면 안정적인 수자원 확보가 가능해진다. 히말라야 티베트에서 발원한 인더스강은 인도령 카슈미르를 거쳐 파키스탄으로 흐른다. 인도가 제재 수단으로 200% 수입 관세 부과와 함께 수자원 공유를 차단하겠다고 파키스탄을 압박한 이유다.
강화되는 힌두 민족주의
전면전 확대를 피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모디 총리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인도가 자살테러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공습을 감행한 배경엔 강화된 힌두 민족주의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모디 총리는 지난달 28일 “인도는 하나가 돼 적과 싸울 것이며 적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기 위해 테러를 저지른다”고 파키스탄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2014년 취임한 모디 총리는 힌두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파키스탄에 강경 대응할수록 정치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모디 총리는 경제 개혁 정책을 밀어붙였지만 취업난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집권 인도국민당(BJP)과 야당의 지지율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한 카슈미르에서의 테러 공격은 오히려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전기가 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장기적인 양국 관계 안정을 위해서는 테러 조직에 대한 파키스탄 측의 직·간접적인 지원이 중단돼야 한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카슈미르 반군 자이쉬-에-무함마드(JeM)는 이번 자살테러의 배후를 자처했다. JeM은 파키스탄정보국(ISI)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 양상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를 지원하고 중국은 미국과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파키스탄을 지지하고 있다. 샤 메흐무드 쿠레시 파키스탄 외교장관은 지난달 27일 왕이 중국 외교장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중국은 지금까지 파키스탄에 전함, 전투기, 단거리 미사일, 잠수함, 감시용 무인기 등 재래무기를 다량으로 판매해왔다.
또 파키스탄의 과다르항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의 핵심 요충지다. 파키스탄 과다르항에 도착한 원유를 중국까지 운송하기 위한 가스관과 철도·도로망 구축은 양국 간 경제협력의 핵심 사업이다.
반면 미국의 외교적 개입은 이전에 비해 확연히 줄었다. 크리샨 싱 전 인도 대사는 트위터를 통해 “중재자로서 미국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했다. 다만 미국은 이번 사태의 불똥이 아프가니스탄으로 튀어 철군 계획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2차 미·북 정상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 상황을 언급하기도 했다.
영국 가디언 등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할 정도로 경제난을 겪고 있는 파키스탄의 칸 총리와 총선을 앞둔 모디 총리 모두 전면전을 벌일 여력이 없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는 두 나라에 잇따라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자칫 핵무기 사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니얼 마키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핵 사용 위협이 일상적이지만 이번 사태는 다르다”며 “심도 있게 지켜보면서 핵전쟁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오랜 앙숙인 인도와 파키스탄이 카슈미르 지역에서 또다시 무력 충돌했다. 세계는 핵무기 보유국인 두 나라에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군사력을 비교해보면 인도는 병력과 탱크, 전투기 등 재래식 전력에서 월등히 앞서 있다. 핵무기와 미사일 수 등 비대칭 전력에서는 파키스탄이 약간 우위에 있지만 활용 범위와 능력을 엄밀히 분석하면 이 역시 인도가 앞선다는 평가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파키스탄은 군사력 차이를 극복하고자 중·단거리 핵미사일을 개발하는 등 핵 억지력을 갖춰왔다”고 전했다. 이 같은 군사력 차이는 파키스탄이 억류했던 인도 군 포로를 지난 1일 송환하는 등 화해의 손길을 먼저 내민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한다.국제전략연구소(IISS)와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에 따르면 인도 군병력은 예비군 209만 명을 포함해 510만 명에 달한다. 파키스탄 병력은 인도 현역병의 3분의 1 규모인 93만5800명이다.육·해·공군이 가지고 있는 군사 장비에서도 인도가 파키스탄을 크게 앞서고 있다. 인도 육군이 보유한 탱크는 3565대 이상, 장갑차는 3436대 이상, 포대는 9719대 이상이다. 파키스탄 육군 장비 수보다 2배 가까이 많다.인도 해군은 파키스탄에 없는 항공모함을 1척 보유하고 있다. 세계에서 9개국만 가지고 있는 항공모함은 현대전에서 승패를 가를 수 있는 결정적인 전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도 잠수함은 15척, 구축함은 27척으로 파키스탄이 보유한 잠수함(8척), 구축함(9척) 수를 앞선다. 인도 공군이 보유한 전투기는 889대, 헬리콥터는 805대로 파키스탄보다 많다.인도는 2013~2017년 세계 무기 수입액의 12%를 차지하는 1위 수입상이다.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무기가 60%를 차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파키스탄은 인접국인 중국으로부터 들여오는 무기 규모가 전체 수입량의 70%를 차지한다.비대칭 전력 보유 숫자는 양국이 비슷하다. 다만 인도는 탄도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는 핵 잠수함이 있다는 점에서 비대칭 전력 활용 범위가 넓다. 파키스탄에는 핵 잠수함이 없다. 각국이 보유한 핵탄두는 인도 130~140기, 파키스탄 140~150기로 추정된다. 사거리 1000㎞ 미만인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은 인도가 42개, 파키스탄이 30개 이상을 갖고 있다. 사거리 1000~3000㎞인 중거리탄도미사일(MRBM)은 파키스탄이 30개 이상으로 인도(12개)보다 많다.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
남인도는 다르다. ‘인도’를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아니다. 거리는 깨끗하고 사람들은 한가롭다. 야자수 아래 여유가 넘실댄다. 읽고 쓰는 문자도 다르다. 남인도 케랄라주에 있는 고풍스러운 도시, 코치(Kochi). 코치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무역항으로, BC 3세기부터 향신료를 사고팔았던 도시다. 아담한 코치에 긴 역사와 다양한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유다. 바람결에 실려 날아온 시나몬 향을 따라 남인도 코치로 떠나보자.인도의 대표적인 향신료 무역항코치는 한때 스타였다. 향신료 무역의 중개지로 이름을 날렸다. 코치가 속한 케랄라 지역은 향신료가 잘 자라는 천혜의 땅이었다. 카다몬, 커민, 가람마살라 등 이름마저 이국적인 향신료들이 넘쳐났다. 향신료는 알싸한 향을 솔솔 풍기며 유럽인들을 코치로 불러들였다. 향신료는 한때 보석보다 비싸게 거래될 정도로 귀했다. 향신료 무역이 부와 권력을 상징했던 시대, 코치는 바다 건너 배를 타고 온 이방인에게 황금의 땅이나 다름없었다.얼굴색 다른 이들이 세계에서 몰려들면서 코치에는 문화가 섞이기 시작했다. 오늘날 코치에서는 인도 남부 전통문화뿐만 아니라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영국 문화와 인도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유대인 마을까지 다양한 문화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아라비아해의 황홀한 바다와 울창한 야자수 숲, 고요한 항구는 덤이다. 자그마한 마을에 겹겹이 쌓인 나이테는 코치를 더욱 특별하게 한다.성당부터 교회, 유대교 회당까지유럽에서 향신료를 찾아 온 이들은 코치에 성당을 세웠다. 1503년 건설된 인도 최초의 성 프란시스 성당이다. 성 프란시스 성당은 기구한 운명을 갖고 있다. 포르투갈 수도회에서 성당으로 지었지만, 코치가 네덜란드 영향 아래 들어가면서 개신교회로 사용됐다. 이후 영국 지배 때는 성공회당으로 쓰였다. 성 프란시스 성당은 슬픈 과거를 안고 덤덤하게 서 있다.포르투갈의 항해사 바스쿠 다가마의 흔적을 좇아 성당을 찾는 이도 적지 않다. 다가마의 시신이 12년간 성 프란시스 성당에 묻혀 있었기 때문이다. 성당 안에는 다가마의 묘비가 남아 있다. 1498년 코치 북부에 도착한 다가마는 코치를 향신료 무역의 거점으로 삼아 활동하다 코치에서 눈을 감았다.성 프란시스 성당과 함께 여행자들이 들르는 곳이 마탄체리 궁전과 유대인 마을이다. 마탄체리 궁전은 코치를 지배하던 마하라자가 머물던 궁전으로, 포르투갈 상인들이 지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힌두 신화를 담고 있는 벽화가 화려하다. 마탄체리 궁전에서 나오면, 유대인 마을로 이어진다. 한때 500여 가구에 달할 정도로 많은 유대인이 마을에 살았지만,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수백 년간 코치에 머무른 유대인이었지만,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둥지를 하나둘 옮겼다. 마을에는 유대인의 흔적인 파르데시 시나고규라는 유대교 회당이 남아 있다. 고즈넉한 회당에 앉아 구석구석 살펴보면, 인도가 아니라 예루살렘에 와 있는 착각이 든다.유대인 마을은 골동품점이 모여 있는 장소로 유명하다. 긴 세월 코치를 여러 문화의 사람들이 오가던 흔적이다. 현란한 색의 가네시상을 비롯해 두 손 모으고 있는 성모상, 작동하지 않을 것 같은 오래된 전화기까지 작은 골동품 가게 안에 시공간을 넘나드는 물건이 쌓여 있다. 골동품을 구경하며 걷다 보면, 코를 자극하는 향이 달려든다. 향신료가 가득한 스파이스 마켓이다. 쌀자루만 한 큰 포대에 클로브와 카다몬, 시나몬, 정향 등 귀한 향신료가 넘쳐난다. 색도 향도 모양도 다른 향신료들. 향에 흠뻑 취해 있다 보니, 이제야 ‘아, 인도구나’하는 느낌이 온몸에 퍼진다.비엔날레가 열리는 ‘예술의 도시’코치는 카페에서 한가롭게 책장을 넘기며 향기로운 차 한 잔 즐기기 더없이 좋은 도시다. 고풍스운 분위기와 함께 ‘예술의 도시’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향신료를 둘러싼 암투와 분주한 무역이 과거였다면, 현대 미술과 풋풋한 낭만이 코치의 오늘이다.코치 구시가를 어슬렁거리다보면 눈을 사로잡는 새하얀 건물이 나타난다. 아스핀월 하우스로, 코치가 무역항으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 향신료를 비롯해 각종 무역품을 저장하던 공간이다. 코치에서 2년마다 국제미술전인 비엔날레가 열리는데, 아스핀월은 비엔날레(Kochi Muziris Biennale)가 열리는 대표적인 장소다. 인도 작가들의 독특한 작품들을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올해 비엔날레는 3월 29일까지 코치 곳곳에서 펼쳐진다.비엔날레 전시작품은 아스핀월뿐만 아니라 향신료 창고로 쓰였던 페퍼 하우스(Pepper house)에서도 접할 수 있다. 페퍼 하우스는 고즈넉한 야외 카페와 천장이 높은 아름다운 도서관이 어우러져 코치의 낭만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코치에는 카페투어를 하고 싶을 만큼 멋진 카페가 줄줄이 이어져 있다. 대표적인 곳이 카시 카페(Kashi cafe)와 데이비드 홀(David Hall)이다. 두 공간 모두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남인도 커피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아트 카페다. 아기자기한 작품을 보고 싶다면 카시 카페로, 넓은 정원에서 그네를 타며 여유를 누리고 싶다면 데이비드 홀을 추천한다. 티 폿(Tea Pot)은 공간 자체가 작품 같은 카페다. 알록달록한 찻주전자를 높은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아놨다. 유쾌한 인테리어 속에서 맛보는 이국적인 차 한 잔. 수많은 이들이 왜 코치에 반했는지 어렴풋이 감이 온다.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전통공연, 카타칼리현대미술이 주류를 이루지만, 전통문화를 볼 수 있는 공연도 있다. 바로 남인도 전통 무용인 카타칼리(kathakali)다. 카타칼리는 바라트 나트얌, 카탁, 마니푸리와 함께 인도 4대 무용 중 하나로 꼽힌다. 대사가 따로 없는 무언극으로, 음악과 표정, 몸짓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카타칼리 공연이 다른 공연과 특이한 점 중 하나는 분장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공연은 오후 6시에 시작하지만, 관람객들은 한 시간 전인 5시부터 자리하고 있다.카타칼리 공연을 보기 위해 케랄라 카타칼센터로 향했다. 5시가 막 넘었을 뿐인데, 이미 배우들이 분장을 시작했다. 붓으로 세밀화를 그리듯, 거울을 보면서 얼굴에 그림을 그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배우들의 얼굴이 조금씩 달라졌다. 우락부락해 보이던 남자의 얼굴이 메이크업의 힘으로 곱디고운 여인으로 변신했다.공연 시작 전, 얼굴로 어떻게 감정을 표현하는지 보여줬다. 사람의 표정이 다양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눈동자가 이처럼 수많은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느꼈다. 표정과 눈동자뿐만 아니라 무드라라고 부르는 손동작도 중요하다. 사물을 표현할 때 주로 손을 이용한다. 공연이 시작되자, 세 명의 등장인물이 차례로 나와 갈등과 고뇌의 순간들을 보여줬다. 분장할 때 보지 못했던 화려한 복식도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큰 동작에 힘을 주기 위해 양쪽 발에 주렁주렁 방울을 달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카타칼리는 힌두신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번 공연은 대서사시인 마하바라타(mahabharata) 중 일부로, 왕자의 부인을 겁탈하려는 악인을 물리치는 이야기였다. 전통 음악이 깔리고 그 음악에 맞춰 시시각각 변하는 배우들의 세심한 표정과 섬세한 동작, 가끔 터지는 거침없는 괴성까지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막이 내린 뒤에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한참 동안 공연장에서 나가지 못할 정도였다.코코넛의 고소함을 담은 남인도 밀스전통 문화를 맛봤다면, 다음은 음식을 맛볼 차례다. 식당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남인도식 백반, 밀스(meals)는 꼭 맛봐야 할 현지 음식이다. 반찬 격인 사브지와 소스인 차트니를 밥과 함께 낸다. 북인도 백반인 탈리에는 차파티가 올라오지만, 밀스에는 밥이 나온다. 손으로 쓱쓱 비벼서 먹는다. 인심도 후해서 차트니와 밥, 사브지를 원하는 만큼 계속 추가해준다. 밀스를 조금 더 맛있게 먹고 싶다면, 생선튀김이나 조림을 한 토막 추가로 주문하자. 한 끼 식사가 더 풍성해진다.밀스를 먹다 보면 코코넛의 고소함이 느껴진다. 야자수 넘실거리는 남인도답게 음식을 만들 때 코코넛을 듬뿍 넣기 때문이다. 향신료가 풍성해, 반찬은 코와 혀를 자극하는 알싸한 맛이 난다. 밀스가 특별하게 느껴진 이유 중 하나는 그릇에 있다. 남인도에서 밀스를 주문하면 대부분 바나나 잎에 올려준다. 식당 한쪽에 바나나 잎이 층층이 쌓여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코치의 하루는 중국식 어망 감상으로 마무리한다. 중국식 어망은 코치의 아이콘 중 하나로,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 칸이 대륙을 호령하던 시절 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어망을 보기 위해 아라비아해로 나간다. 바다에 거대한 그물망이 줄줄이 널려 있다. 건강한 팔뚝을 한 장정들이 그물을 내린 뒤 고기가 모이기를 기다렸다 그물을 건져 올린다. 잡히는 고기가 그다지 많지 않지만, 인간의 힘으로만 고기를 잡아 올리는 모습이 아름답다.여행자들에게는 어망이 늘어서 있는 곳이 일몰 포인트다. 오렌지 빛으로 물드는 하늘과 삼각형 모양의 어망이 멋진 풍광을 연출한다. 코치에 와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간 수많은 이들의 흔적이 어망에 묻어 있는 것 같다. 파스텔 톤으로 젖어드는 하늘처럼, 마음속에 코치가 진하게 자리 잡기 시작한다.코치=글·사진 채지형 여행작가 travelguru@naver.com여행정보◆시차: 한국과 3시간30분 차이가 난다.◆통화: 루피(INR)를 사용한다. 100루피는 약 1590원(2019년 1월 환율 기준).◆항공: 한국에서 코치까지의 직항은 아직 없다.에어아시아를 타고 쿠알라룸푸르를 경유하는 비행편이 많이 이용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통해 델리 또는 뭄바이로 들어간 뒤 국내선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히말라야 산맥 서쪽에 있는 남북한 넓이(22만㎢)의 산악지대, 해발 8000m가 넘는 고드윈오스턴(K-2봉)과 낭가 파르바트산, 눈 녹은 물이 숲과 초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곳, 록그룹 레드 제플린이 ‘태양이 내 얼굴에 부딪히고 별들이 내 꿈을 채우는 곳’이라고 노래한 순수의 시원….이렇듯 천혜의 자연을 갖춘 카슈미르(Kashmir)는 오랜 분쟁을 겪으며 ‘서남아시아의 화약고’로 불리고 있다. 이곳은 인도령(잠무 카슈미르)과 파키스탄령(아자드 카슈미르·길기트발티스탄), 중국령(아크사이친)으로 분리돼 있다. 인구도 70% 이상은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 나머지는 힌두교 신자로 나뉘어 있다.이 지역의 비극은 1947년 영국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인도대륙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할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무슬림 주민은 파키스탄에 편입되기를 바랐지만 힌두교를 믿는 지도자는 인도를 택했다. 이에 반발한 무슬림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인도의 무력 개입으로 첫 번째 전쟁이 발발했다. 유엔 중재로 휴전이 된 후 카슈미르는 파키스탄령과 인도령으로 양분됐다.2차 전쟁은 인도가 지금의 잠무 카슈미르를 연방의 하나로 편입하자 현지 주민과 파키스탄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터졌다. 1971년에는 인도가 동파키스탄 독립 문제에 개입하는 바람에 3차 전쟁이 일어났다. 인도는 이 전쟁에서 승리했고,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로 독립했다.카슈미르의 오랜 갈등은 핵무기 개발 경쟁으로 이어졌다. 인도가 1974년 핵실험을 단행하며 핵 보유국이 되자 파키스탄도 1998년 실험을 통해 핵 보유국을 선언했다. ‘핵 카드’를 앞세워 긴장 관계를 유지해온 양국 간에 최근 공습과 전투기 격추 등 무력 충돌이 다시 일어났다. 핵을 가진 두 나라가 공군력을 동원해 전투를 벌인 것은 이례적이다.카슈미르 분쟁의 씨앗은 종교 갈등에서 시작됐지만 인도·파키스탄의 영토 분쟁, 인도·중국의 지역 패권 갈등, 테러와의 전쟁 등이 맞물리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번 공습으로 파키스탄 영공이 폐쇄되면서 유럽행 하늘길이 막혀 국제선 항공기의 무더기 결항 사태까지 발생했다.한때는 카슈미르산 산양털로 짠 ‘캐시미어(cashmere)’가 세계를 누볐다. 지금은 앙숙 간의 해묵은 싸움으로 산양뿐만 아니라 주민들 생활도 피폐해졌다. 그 뒤에 핵무기를 손에 쥔 권력자들의 야욕이 있다.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