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주목받는 베트남式 발전모델 '도이머이'
베트남의 수출 주도 개혁정책인 도이머이(쇄신)가 북한의 경제발전 모델이 될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노이 시내에서 모터사이클과 자동차가  뒤섞여 교통 혼잡을 빚고 있다. /한경DB

베트남의 수출 주도 개혁정책인 도이머이(쇄신)가 북한의 경제발전 모델이 될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노이 시내에서 모터사이클과 자동차가 뒤섞여 교통 혼잡을 빚고 있다. /한경DB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베트남의 ‘도이머이(쇄신)’ 개혁 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정은은 작년 4월 문재인 대통령과의 판문점 회담에서 베트남식 개혁·개방 노선을 추진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다. 동유럽식 급진적 개혁과 중국식 점진적 개혁 정책을 절충한 도이머이 모델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성공한 대표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과연 도이머이 모델의 본질은 무엇이며 지난 30년 동안 베트남은 이를 기반으로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살펴본다.

(1) 왜 지금 도이머이인가

사회주의→시장경제 성공 모델…美 "北도 베트남처럼 발전가능"


베트남은 미국과 오랫동안 전쟁을 벌인 적대국에서 친미(親美) 국가로 바뀐 나라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접고 시장경제 시스템을 받아들인 나라이기도 하다.

미국에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나라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3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베트남으로 부른 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면 베트남처럼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라고 보도했다. 지난해 7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북한이 도이머이 혁신을 이뤄낸 베트남처럼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으로선 베트남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번영을 이룬 국가라는 점에서 롤모델로 삼을 가치가 있다. 일부에선 미·중 패권 전쟁에서 북한이 중국보다 미국에 무게추를 싣기 위해 베트남을 선택했다는 분석도 있다.
年6.6% 성장한 '도이머이' 모델로 글로벌 분업에 편입하려는 북한

(2) 도이머이 개혁의 본질은

수출 중심 대외개방 급진적 추진…정부, 적극적으로 해외자본 유치


베트남은 공산화 이후 옛 소련형 성장 모델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생산성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공업화는 더뎠고 식량 부족까지 겪어야 했다. 여기다 미국 및 서방국가들이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면서 베트남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됐다. 베트남 정부는 대외 개방과 수출을 지렛대로 시장경제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베트남 정부는 1986년 도이머이를 시작하며 점진적인 내부 개혁을 했다. 농업 부문의 개혁을 단계별로 추진했고 국영기업도 급격한 민영화보다 부실기업을 정리하고 통합하는 방식을 택했다.

동시에 시장경제로의 시스템 전환에는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시장경제의 핵심인 상품 가격의 자유화를 곧바로 시행했고 외국인투자법을 제정해 해외 자본에 문호를 열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도이머이 개혁을 ‘부분적 급진개혁’이라고 평가한다.

(3) 도이머이는 어떻게 성공했나

韓·日 등 생산공장 이전 호재에 수출 최대시장 미국과 손잡아


정부 정책 전환뿐만 아니라 때마침 불어닥친 세계화 바람도 베트남의 수출주도형 성장을 뒷받침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엔고(高)에 허덕이던 일본 기업들과 노동비용 증가로 어려움을 겪던 한국, 대만 등의 기업들이 속속 동남아시아 각국으로 생산 거점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때 베트남 정부의 적극적인 해외 자본 유치 공세에다 값싼 노동력, 뛰어난 입지 여건 등이 외국 기업의 구미에 잘 맞았다. 베트남은 세계화 흐름을 최대한 활용해 성장한 전형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베트남은 1995년 미국과 국교를 수립하고 2000년에는 무역협정을 체결했다. 최대 시장인 미국 수출을 늘릴 기반을 확보한 것이다. 2007년엔 세계무역기구(WTO)에도 가입했다. 외국인 투자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배경이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2000~2018년 베트남의 연평균 성장률은 6.6%에 달했다.

(4) 中 개혁·개방 정책과 차이는

내수 성장보다 해외자본에 의존, 균형발전 중시…특구정책 안펴


도이머이는 중국 덩샤오핑이 추진한 개혁·개방 정책과 많은 점에서 비슷하다. 베트남은 중국 개혁·개방 정책보다 8년 늦은 1986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이머이를 시작했다. 공산당 통치 아래서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점도 똑같다. 국유기업에 대한 정부 장악력 또한 크다.

하지만 자체 자본이 부족해 해외 자본에 의존한 경제발전이라는 점에서 중국과 다르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 지원과 함께 외국 기업 직접투자 유치에 공을 들였다. 중국은 내수 성장과 수출을 병행했지만 베트남은 수출산업 위주로 발전을 꾀했다. 중국이 상하이와 선전 등 경제특구를 조성했다면 베트남은 균형발전을 염두에 두고 특구 정책을 펴지 않았다. 농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아 급진적으로 추진할 경우 사회·경제적 혼란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5) 한국과 베트남 경제 협력은

韓, 작년 가장 많이 투자한 나라…삼성전자 공장, 전체 수출액 20%

한국 기업들은 도이머이가 시작된 뒤 베트남 수출과 투자를 서둘렀다. 1985년 1500만달러에 불과하던 베트남 수출은 도이머이 이후인 1988년 6000만달러, 1992년 2억달러로 증가했다. 기업 투자는 2000년대부터 본격화됐다. 1992년 투자 건수가 26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6549건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투자액은 25억달러로 추정된다. 한국은 지난해 베트남에 가장 많이 투자한 나라다. 베트남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투자액은 2위 투자국 일본의 투자액에 비해 거의 2배나 된다.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되는 스마트폰은 베트남 전체 수출액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단일 품목 기준으로 1위 수출품이다. 베트남의 수출주도형 성장에 버팀목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베트남은 국제 분업 체계에서 갈수록 각광받고 있다. 기업 환경이 나쁘지 않은 데다 바다와 연결된 인도차이나반도 요충지라는 이점이 크기 때문이다. 동남아 각국에서 생산된 부품이나 소재 등 중간재를 베트남에서 가공해 수출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6) 도이머이의 미래는

최근 亞 물류 거점으로 급부상…부품·소재산업 육성 안간힘


베트남 정부는 일본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일찌감치 가입하는 등 다자간 협정에도 적극적이다. 중국의 해상 실크로드 전략도 베트남에서 시작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트남을 깍듯이 대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부 베트남뿐만 아니라 북부 베트남에도 해상의 물류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베트남 정부는 지난해 5월 락후옌 국제부두를 개항하기도 했다.

베트남 정부는 물론 단순히 조립 가공만 하는 산업에서 벗어나 부품·소재 등을 키워 글로벌 공급망(서플라이 체인)의 한 축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삼성전자 공장에 현지 공급하는 베트남 업체가 갈수록 늘고 있다. 2014년만 해도 현지 부품 공급사가 4개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29개에 달한다. 베트남 정부는 2020년까지 50개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7) 북한이 도이머이 주목하는 이유

외부 자본에 의존한 성장 불가피…단일지도체제서 성공할지 의문


북한은 도이머이 개혁 도입 이전의 베트남 사정과 여러 여건이 비슷하다. 과거 베트남은 미국과의 수교를 통해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났다. 지금 북한에 필요한 과제다. 자체 자본력이 부족한 만큼 외부 자본에 의존한 성장 전략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하지만 베트남은 단일지도 체제가 아니고 집단지도 체제다. 국민들은 공산당 지도자들을 거의 알지 못한다.

북한이 중국 모델이 아니라 베트남 모델을 받아들인다는 건 지나치게 강한 중국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중국은 대북 지원 및 경협 확대 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길 원하지만 북한 입장은 이와 다르다는 분석이다. 중국과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미국 역시 북한을 중국이 아니라 베트남식 모델로 이끌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도이머이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나올지 주목된다.
年6.6% 성장한 '도이머이' 모델로 글로벌 분업에 편입하려는 북한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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