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
프랑스 정부가 근로자들의 과도한 병가 사용 행태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프면 집에서 일하게 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정부는 법정 휴가를 제외하고도 연 평균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병가를 가버리는 근로자들 때문에 사회 전반에 부담이 크다는 주장입니다. 노동자들은 정부가 자신들을 싸잡아 거짓말쟁이로 보고 있는 것이냐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지난 20일 프랑스 정부는 최근 증가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병가 사용 일수에 따른 사회적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 몇 가지를 내부 보고서를 인용해 국민에 공개했습니다. 이날 논의된 방안 중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텔레트라바이(Télétravail·원격 근무)’ 였습니다. 텔레트라바이는 병가를 낸 사람들에 대해 재택근무를 허용하는 방안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보고서를 통해 “현행 병가 제도에는 중간 지대가 없다는 문제가 있다”며 “병원에서도 ‘재택근무 요함’과 같은 진단서를 끊어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실제 프랑스에서는 근로자들 중 병가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는 지적이 여러 차례 나온 바 있습니다. 프랑스 국립통계청(INSEE)에 따르면 2017년을 기준으로 프랑스 민간기업 직원들은 평균적으로 연간 17일에 달하는 병가를 다녀왔다고 합니다. 올해는 18일로 늘어날 것이란 전망입니다. 법으로 보장된 연간 5주 유급휴가와는 별개입니다.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는 “마치 전 국민이 병가를 또 다른 휴가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프랑스 노동자들의 병가 사용 행태는 정부 재정에 부담을 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노동자들의 권익을 중요시 여기는 프랑스에서는 병가 3일차까지는 무급 휴가로 처리되지만 4일차부터는 매일 정부 보조금이 나옵니다. 프랑스 국민건강보험은 근로자 병가 보조금으로 2017년 한 해 동안 총 100억유로(약 13조원) 가량을 지출했습니다. 근로자들의 잦은 병가는 기업 차원에서도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정부는 텔레트라바이 제도가 도입되면 장기간 휴직해야 하는 경우에도 재택 근무를 통해 업무의 감을 유지시켜 경력 단절 문제 방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일을 하고 싶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근로자가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것이라고도 전했습니다. 하루 최대 44.34유로(약 5만6500원) 밖에 되지 않는 정부 병가 보조금으로는 생활이 빠듯한 근로자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프랑스 노동계는 정부 발표에 격분하는 반응입니다. 프랑스노동총동맹(CGT)은 성명을 통해 “정부는 근로자들이 모두 게으른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반발했습니다. CGT의 파브리스 앙젤리 대변인은 “병가를 낸다는 건 일을 할 수 없는 몸 상태임을 의미한다”며 “정부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방안을 고려했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너무나도 다양한 종류의 직업이 있는데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의사가 특정 사람의 재택근무 가능 여부를 판단할 것인가”라고도 했습니다.
1975년~2017년 프랑스 실업률 현황
1975년~2017년 프랑스 실업률 현황
한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17년 대선운동 당시부터 대대적인 노동 개혁을 통해 근로자에 대한 과도한 복지와 고용 안정성을 점차 줄여나갈 것을 시사한 바 있습니다. 기존 근로자들이 좋은 일자리를 모조리 차지하고 있어 신규 취업자들의 진입이 크게 제한되고 있다면서 말이지요. 2019년 2월 기준 프랑스의 실업률은 한국(3.8%)을 훌쩍 넘어선 8.8%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INSEE에 따르면 프랑스의 청년 실업률은 지난해 4분기 18.8%로 집계됐습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