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北, 비핵화 정의조차 합의 못해…美언론 "대북정책 혼란에 빠졌다"
미국과 북한의 2차 정상회담 준비에 정통한 미 정부 고위 당국자가 21일(현지시간) 북핵 협상의 우선순위로 ‘핵 동결(미사일 포함)’을 언급했다. 미국이 협상 우선순위로 핵 동결을 공식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북핵 협상의 목표를 ‘완전한 비핵화’에서 크게 낮춘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 당국자는 또 미국과 북한이 아직까지 비핵화 정의에 합의하지 못하고 있으며 “북한이 (정말로) 비핵화하기로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미 언론에선 “미국의 대북정책이 완전한 혼란에 빠졌다”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날 콘퍼런스콜을 통해 오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2차 미·북 정상회담 준비 상황을 브리핑했다. 30여 분간 이어진 콘퍼런스콜에선 부실하게 이뤄지는 북핵 협상의 현주소가 드러났다.

비핵화 정의도 안 돼 있다

미 당국자는 이날 ‘비핵화 정의가 합의됐느냐’는 질문에 “더 진전시켜나가려고 초점을 맞추는 부분 중 하나”라고 말했다. 하노이 회담을 곧 앞두고 있지만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의 정의에서조차 ‘딴소리’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가 무엇이냐’는 후속 질문에도 그는 “북한과 협상 중으로 그들의 입장을 특정 짓고 싶진 않다”고 즉답을 피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그동안 “북한이 비핵화를 약속했다”고 밝혀왔지만 사실은 ‘북한 비핵화 의지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

미 정부 당국자는 ‘정보당국도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들을 믿고 협상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북한이 비핵화하기로 선택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완전히 비핵화할 것이라는 가능성 때문에 협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직후 “진짜로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이 모든 핵무기를 포기할 것으로 믿는다”고 장담했다.

미국 인터넷매체 복스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완전한 혼란에 빠졌다는 게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이전에 거짓말을 했거나 북핵 협상이 실제론 어디쯤 와 있는지 불확실하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월간 애틀랜틱은 “2차 정상회담을 며칠 앞두고 트럼프 행정부 관료가 ‘김정은이 핵무기와 결별할 준비가 안 돼 있을지 모른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완전한 비핵화’ vs ‘핵 동결’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 핵 동결을 우선 목표로 언급한 것도 논란을 부르고 있다.

미 당국자는 이날 비핵화 실무협상인 ‘비건-김혁철’ 회담과 관련해 우선순위의 일부로 △비핵화 정의 공유 △로드맵을 위한 협력과 함께 △모든 대량살상무기(핵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의 동결을 꼽았다. 미국이 하노이 정상회담의 목표를 ‘완전한 비핵화’ 대신 ‘핵 동결’로 잡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라는 지적이다.

북핵 협상의 미국 측 책임자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하노이에서 북한 측 카운터파트인 김혁철 대미특별대표와 막판 실무협상을 벌이고 있다. 비건 대표가 북핵 협상 과정에서 조언을 구한 것으로 알려진 스탠퍼드대와 카네기재단의 북핵 전문가들은 완전한 비핵화 전 중간단계로 핵과 미사일의 ‘동결’ 또는 이와 비슷한 ‘봉인’을 제안해왔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 결과가 핵 동결에 그치면 북한이 사실상 핵 보유국이 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핵 동결은 북한의 핵 능력 확대를 막는 효과만 있을 뿐 기존 핵은 건드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핵 동결은 북한이 원하는 카드일 수도 있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핵무기의 추가 제조·실험·사용·전파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추가 제조와 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건 현 수준에서 핵을 동결하겠다는 의미다. 기존 핵을 폐기하겠다는 내용이 빠지면서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한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미국이 이번 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 대신 핵 동결을 목표로 삼으면 북한의 ‘시간 끌기 작전’에 말려들지 모른다는 비판도 있다. 북한은 과거 핵 협상 때마다 비핵화 과정을 최대한 잘게 쪼개 단계마다 주고받기 협상을 하는 식으로 시간을 끄는 ‘살라미 전술’을 펴왔다.

비건 대표의 협상 전략에 관해선 미 행정부 내에서도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는 전날 “(강경파인) 존 볼턴(국가안보보좌관)은 비건 대표가 (북한과) 합의하려고 너무 안달한다고 보고 있으며, 협상이 실패할 것으로 믿는다”고 보도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