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장산정 前 총리 "韓, 외부서 전력 못 끌어오는데…脫원전하다 탈나면 누가 책임지나"
장산정(張善政) 전 대만 행정원장(총리)은 10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는 내내 냉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탈(脫)원전 반대 진영의 주장이라도 사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비판했다. 그는 탈원전 문제는 대의명분보다 국가 전반의 산업 구조와 결부해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정치인과 전문가가 정파적 이해에 매달려 자신들의 주장을 고집하기보다 국민이 제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객관적인 정보를 더 많이 제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인터뷰는 타이베이에 있는 장 전 행정원장의 개인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탈원전 정책을 산업구조 전체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말씀이 신선합니다.

“대만은 한국 이상으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전자산업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습니다. 탈원전으로 전력 원가가 높아지거나 수급에 어려움이 생기면 관련 산업은 물론 국민경제 전체가 타격을 받습니다. 탈원전 진영은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사례로 유럽 일부 국가를 듭니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대만 또는 한국과 근본적으로 다른 산업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전력이 부족할 때 외부에서 끌어올 수 없는 한국, 대만과 사정이 다릅니다. 탈원전으로 전력이 부족해져 산업이 타격을 입으면 누가 책임지나요. 수십 년간 피땀 흘려 조성해온 산업구조를 탈원전이라는 대의만으로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민진당 정부 들어 탈원전을 추진한 대만에서는 다른 에너지원으로 충분한 전력을 공급하기엔 역부족이었나요.

“원전을 대체하겠다는 에너지원의 문제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석탄 및 석유는 대기를 오염시키고 이산화탄소(CO₂)를 내뿜습니다. 신재생에너지는 여전히 기술적으로 문제가 많습니다. 흐린 날 태양광발전이 이뤄지지 않고, 바람이 없으면 풍력 터빈이 돌아가지 않아 전력 인프라에서 가장 중요한 안정성을 맞추지 못합니다. 결국 대만과 한국 등 탈원전을 주장하는 정부는 천연가스 비중을 늘리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발전 비용이 비싸고 CO₂ 배출은 여전합니다. 반면 원전은 대기오염과 CO₂ 문제가 없으면서 저렴한 가격에 안정적인 전력 생산이 가능합니다. 전력은 경제 및 기업 활동의 토대인 만큼 ‘무엇을 좋아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가장 현실적이냐’를 놓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원전은 여전히 가장 실용적인 에너지원입니다.”

▶국민투표 패배에도 민진당 정부는 탈원전을 궁극적인 목표로 고수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탈원전을 주장해왔던 정치세력이 이를 하루아침에 뒤집기는 힘듭니다. 스스로도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당장 포기할 순 없습니다. 민진당 지지자 중 탈원전을 강력히 주장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정치가와 전문가들이 정파적 이익을 떠나 국민에게 객관적인 상황을 충분히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한된 정보만 있으면 유권자들은 감정에 휩쓸리거나 사안을 잘못 판단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충분한 정보 제공이 포퓰리즘을 막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국민투표에서 탈원전 반대 진영이 승리한 것은 충분한 정보 제공의 결과입니까.

“차이잉원 총통과 민진당 정부에 대한 반감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싫으니 정부가 의욕적으로 밀어붙이는 주요 정책 중 하나인 탈원전에 대해서도 반대한 유권자가 많습니다. 안정적인 에너지 정책을 정착시키기 위해 여전히 국민에게 많은 설명을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으로 전력 소모가 늘어 탈원전으로는 전력 품귀가 더 극심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그 부분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클라우드 컴퓨팅을 하면 중앙 서버에는 전력 수요가 늘지만 일선에선 소모 전력이 감소합니다. 지능화로 생산 현장과 빌딩의 에너지 소모는 대폭 줄어듭니다. 물론 산업 발전에 따라 전반적인 에너지 수요는 계속 늘겠지만 AI 기술 확산 등이 전력 수요를 크게 끌어올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한국에 충고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국민이 객관적인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생에너지의 경제성부터 원전의 안전성까지 탈원전을 둘러싼 여러 사실 관계를 하나하나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전 건설 및 탈원전 운동 등에 이해관계가 없는 제3의 전문기관을 해외에서 선임해 이들이 관련 사항을 조사·발표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합니다. 현실적인 문제에 관한 이해가 넓어지면 서로 타협할 여지도 많아집니다. 탈원전을 둘러싼 대만 내 갈등의 60~80%는 충분히 중간에서 서로 조율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한국은 사회적 비용을 최대한 줄이며 타협점을 찾아갔으면 합니다.”

■장산정 前 총리는…

환경공학 박사출신 정치인…국민당 집권 시절 총리 지내

장산정(張善政) 전 대만 행정원장은 학계와 기업에서 전문성을 쌓은 기술관료 출신 정치인이다. 국립대만대와 미국 스탠퍼드대를 거쳐 코넬대에서 환경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대만대로 돌아와 1990년까지 토목공학 교수를 맡았다. 1991년부터 대만 국가고속컴퓨터센터장으로 컴퓨터 및 인터넷산업 인프라를 확충하는 데 힘썼다. 2000년부터 10년간 대만 컴퓨터업체 에이서의 부사장으로 일한 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구글의 아시아 하드웨어사업을 총괄했다.

2014년 정식 부처로 승격된 과학기술부의 첫 번째 장관으로 임명된 뒤 같은 해 8월부터 행정원 부원장, 2016년에는 행정원장으로 일했다. 국민당이 2016년 5월 대선에 패하면서 물러났지만 마잉저우 전 총통이 임명한 여섯 명의 행정원장 중 국민들의 국정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과학자는 정치에 거리를 둬야 한다’는 부친의 뜻에 따라 어떤 정당에도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국가적 이슈에 관해 개인의 정치적 득실을 신경 쓰지 않고 전문가적 의견을 밝혀 대중에게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 지난해 11월 ‘탈원전 폐기’ 국민투표에서 탈원전 반대 진영 승리를 이끌었다.

타이베이=노경목 특파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