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베네수엘라 반정부 시위와 관련해 24일(현지시간)까지 최소 2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과 친정부 민병대가 시위대를 공격하면서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미국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요구했지만 러시아는 내정 문제라며 안보리 소집을 거부했다.

베네수엘라 인권단체 사회갈등관측소(OVCS)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수도 카라카스에서 18세 남성이 총격으로 숨지는 등 현재까지 26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또 “대부분의 사망자는 19세에서 47세 남성”이라며 “희생자들은 여느 때처럼 평화롭게 시위에 참여했지만 군과 친정부 민병대의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OVCS는 앞서 “이날 오전까지(집계된) 사망자가 16명”이라며 “저소득층 거주지에서 군경의 진압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마두로 대통령 집권 1기 때인 2017년 4∼7월 반정부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면서 125명이 숨졌다.

"베네수엘라 反정부 시위로 26명 사망"…美, 안보리 소집 요구
전날 수도 카라카스에선 지난해 치러진 대통령 선거 무효와 마두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는 해가 지면서 대부분 끝났지만 일부 지역에선 차량과 건물에 방화가 일어나는 등 밤새 혼란이 이어졌다.

야권 지도자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은 ‘권력 강탈자가 집권하면 국회의장이 국가 지도자가 된다’는 헌법 조항을 근거로 ‘임시 대통령’을 자처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등 중남미 우파 국가들이 과이도 의장을 지지하면서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은 둘이 됐다. 반면 러시아를 비롯해 쿠바, 멕시코 등 중남미 좌파 국가들은 마두로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


미국은 이날도 마두로 정권에 대한 압박을 이어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워싱턴DC에서 열린 미주기구(OAS) 회의에서 베네수엘라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유엔 안보리 소집을 요구했다. 또 “극심한 경제난을 겪는 베네수엘라에 2000만달러(약 220억원)의 인도적 지원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마두로 퇴진을 촉구하면서 과이도 의장을 측면 지원하려는 시도다.

미국은 그러면서 베네수엘라에 거주하는 미국인과 미 외교관들에게 출국을 권고했다. 마두로 대통령이 전날 “미국과 외교관계를 단절하겠다”며 “미 외교관들은 72시간 내 떠나라”고 최후통첩을 보낸 데 따른 조치다.

마두로 대통령은 ‘정권 사수’ 의지를 거듭 밝혔다. 카라카스의 한 기념식에서 “물러나야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과이도 국회의장이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는 데 대해선 “미국에 의해 선동된 쿠데타 시도”라고 비난했다. 베네수엘라 군부는 마두로를 지지하고 나섰다.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베네수엘라 국방부 장관과 8명의 장성이 이날 마두로 정권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다. ‘마두로 정권 지지냐, 퇴진이냐’를 둘러싸고 베네수엘라 정국 혼선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베네수엘라 정치 혼란의 배경엔 심각한 경제난이 깔려 있다. 1999년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좌파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이 20년간 이어지면서 경제가 파탄 났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