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 등 대외 초강경파와 해외개입 축소 현실론자간 세싸움 중"
대북 협상·시리아 철군 등 트럼프 밀어붙이기에 현실주의론 득세 형국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무르익고 있는데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6월 제1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활발한 방송 출연이나 인터뷰를 통해 북한이 극도로 거부감을 가진 '리비아 모델'을 거론하는 등 대북 압박 발언을 쏟아냄으로써 회담 탈선 의도를 의심케 할 정도였던 것에 비해 대조적이다.

볼턴 뿐 아니다.

볼턴에 비해선 순도가 떨어지지만 역시 대북 강경파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의 언행도 1차 회담으로 가는 도정 때와는 다르게 대북 압박보다는 회담 성공 분위기 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펜스 부통령은 1차 회담을 앞두곤 완전한 비핵화 주문과 그때까지는 제재 유지 발언으로 고삐를 늦추지 않았던 것과 달리 이번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간 "의사소통은 정말 놀랍다"거나 "2차 회담에서는 김정은이 약속한 진정한 비핵화를 시작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하길 바란다는 기대를 전달할 것"이라는 수준에 머무른다.

심지어 볼턴은 지난해 12월 6일(현지시간) 미국 방송과 인터뷰에선 제2차 회담에서 "성과를 거두면 경제제재 해제(removing)를 검토할 수 있다"고 말해 관측통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대북 초강경파인 볼턴이 대북 제재 이행을 강조할지언정, 완전한 비핵화 이전 제재 해제 가능성을 언급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제1차 회담 때와는 다른 이런 분위기와 관련, 워싱턴 포스트의 지난 16일 자 보도는 시사점이 크다.

신문은 정통한 소식통들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과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을 포함한 보좌관들이 품고 있는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걱정을 눌러 버렸다(has overridden)"고 전했다.

미국 관리들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CVID)' 비핵화라는 용어를 쓰는 빈도가 최근 줄어든 것은 "북한과 타결을 목표로 미국이 양보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신호로 일부 관측통은 보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트럼프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북한과 타결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미국과 북한 양쪽이 각자 뚜렷한 소득을 챙길 출발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트럼프 행정부 내 논의에 정통한 소식통은 설명했다.

미국 해군연구소(CNA)의 켄 가우스 박사는 "북한은 늘 자신들의 핵무기를 협상 초입에 포기하는 것은 안되며, 단계적, 상호적 절차를 통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기본적으로 미국의 입장이 이런 쪽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자신들 사이의 친서 외교 성과에 만족감을 나타내고 정상회담 준비 협상도 비교적 순항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이러한 미국 측의 변화가 크게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김정은의 핵포기 의사를 믿을 수 없으므로 완전한 핵포기 이전엔 제재 해제는 불가하다거나,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김정은 위원장에게 속아서 얻는 것 없이 주기만 할 것이라는 회의론이 상존한다.

그러나 상호적 조치를 통한 단계적 비핵화가 불가피하다고 보는 현실주의 목소리가 1차 회담 때에 비해 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2일 사설을 통해 제2차 정상회담에서 "상호 합의된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는 현실주의적 전략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안정을 진전시키는 실질적이고 상호적인 행동들"로 이어질 수 있는 회담 의제를 발굴할 것을 주문했다.

신문은 특히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과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계"를 맺기를 원하므로 핵무기 포기 의사를 믿는다는 빈센트 브룩스 전 한미연합사령관의 인터뷰 내용을 상기하면서 최소한의 현실적 목표로 `핵물질의 생산과 시험의 영구 종식'을 제시했다.

이 사설에서 특히 주목된 것은 "협상이 굴러갈 징조를 보이면, 존 볼턴 같은 내부 강경파가 훼방 놓지 않도록 트럼프 대통령이 확실히 해둬야 한다"는 주문.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협상에 반대하거나 회의적인 볼턴과 매티스의 강경론을 눌러버렸다는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와 상통한다.

북한, 이란 등의 문제를 무력 개입을 통해 해결하려는 볼턴은 미국의 보수성향이든 진보성향이든 군사 개입을 줄이고 현실주의적 대외 정책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공적'이 된 지 오래다.

조엘 위트 스팀슨센터 연구원은 자신이 만난 북한 외교관들이 볼턴을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의 아버지라고 농담했다"고 공영라디오 방송 NPR 웹사이트에서 소개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가 조지 부시 행정부 들어 볼턴의 주도로 붕괴한 후 북한의 핵 개발이 중단없이 진행돼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을 가리킨 것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 선임연구원은 우선 북한 핵의 동결을 목표로 타결할 것을 주장하면서 그 경우에도 검증의 문제와 함께 "또 하나의 가능한 문제"로 존 볼턴과 마이크 폼페이오를 들었다.

"그들이 생각을 바꾸든지, 트럼프가 그들을 위압(overrule)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백악관에서 가장 무모한 사람", "가장 위험한 사람은 볼턴" "숙청해야 한다"는 등의 반 볼턴론이 분출하고 있다.

헨리 올센 윤리·공공정책센터 선임연구원은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에서 "행정부내 일부가 볼턴에 불리한 것들을 (언론에) 흘리고 있다"며 "존 볼턴이 공격 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수성향의 현실주의 대외 정책론의 거점인 `내셔널 인터리스트'는 '트럼프의 외교정책을 둘러싼 새로운 전투'라는 제목의 글에서 볼턴이 "점차 고립되고 있다"며 "볼턴이 아슬아슬한 상태(on the edge)"라고 전하기도 했다.

포린 폴리시도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린 지시나 공개 발언한 것을 뒤에서 적극적으로 훼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이로 인해 트럼프와 볼턴 사이에 틈이 생길 것이며, 어쩌면 이미 생겼다고 생각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볼턴이 대통령인 트럼프의 외교 정책에 순종하지 않고 뒤에서 이를 훼방하거나 수정해 자신의 외교 정책을 추구한다는 게 볼턴 제거론자들의 주장이다.

두 사람 모두 민족주의적이지만 트럼프는 미국인의 생명과 돈을 쓰는 대외 개입을 줄이려는 반면 볼턴은 '영구 전쟁론'자로 규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을 경계하면서도 대외 개입 축소 정책에 적극 찬동하는 현실주의자들은 시리아 철군 지시, 북미 정상회담 추진 등을 "네오콘, 매파, 상아탑 전사들에 둘러싸여 있던 트럼프가 마침내 본 모습을 되찾은 것"이라고 환영하고 있다.

트럼프가 볼턴을 아직 곁에 두는 것은 볼턴과 그의 보좌관들이 러시아 특검관련 트럼프 대통령을 가장 큰 목소리로 변호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볼턴을 중심으로 한 초강경파와 현실주의파간 세 싸움이 치열하게 진행중인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철군, 대북 협상 등 자신의 외교 의제를 강하게 밀어붙임으로써 현재는 현실주의자들이 기세를 올리는 중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