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취재팀이 지난 18일 일본 최대 전시장인 도쿄빅사이트에서 열린 첨단기술 박람회에서 로봇업체 야스카와의 산업용 로봇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도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취재팀이 지난 18일 일본 최대 전시장인 도쿄빅사이트에서 열린 첨단기술 박람회에서 로봇업체 야스카와의 산업용 로봇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도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지난 18일 도쿄 고토구 도쿄국제전시장(도쿄빅사이트)에서 열린 로봇 박람회에서 단연 인기를 모은 곳은 사이버다인의 전시관이었다. 전시관을 찾은 관람객이 직접 로봇슈트를 착용하고 시연해 볼 수 있어서였다. 사이버다인은 일본 최초로 로봇슈트를 개발해 10년 만에 시가총액 1조원을 넘긴 벤처신화의 모델이다. 기자가 로봇슈트를 착용하고 전원 스위치를 넣자 허리 부분에 팽팽한 긴장감이 전해졌다. 힘을 가하자 로봇슈트가 허리를 꼿꼿하게 받쳐주면서 좀처럼 움직일 수 없었던 여성을 들어올릴 수 있었다. ‘가뿐하게’는 아니었지만 로봇슈트 없이는 들지 못했던 무게였다. 사이버다인 직원은 “로봇슈트를 착용하면 힘을 40% 더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박람회에는 사이버다인 외에도 10여개 회사가 로봇슈트를 출품했다. 독일에서 온 기업도 있었다. 쓰임새 또한 간병보조를 넘어 산업현장, 레포츠 등으로 다양해져 로봇슈트가 이미 상용화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쿄 오타구에서 간병시설을 운영하는 젠코카이(善光会)는 로봇슈트를 적극 도입해 경쟁력을 높인 사례다. 2015년까지만 해도 젠코카이의 간병직원 1명이 돌보는 환자수는 1.86명으로 전국 간병시설 평균인 2명을 밑돌았다. 보조 로봇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결과 지금은 1인당 대응가능한 환자수가 2.68명으로 늘었다. 젠코카이 같은 회사가 늘면서 일본에서 간병 로봇시장은 이미 어엿한 시장으로 성장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12년 1조엔이던 간병로봇 시장이 2035년 10조엔으로 10배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사이버다인 같은 벤처기업 뿐 아니라 가전업체 파나소닉과 변기 등 욕실용품 전문업체인 토토 등 대기업들도 간병 로봇과 보조기구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파나소닉은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노인들의 낙상을 방지하는 침대를, 토토는 거실에 설치할 수 있는 이동식 변기의 실용화를 마쳤다.

대기업과 벤처기업들의 간병로봇 개발 붐은 틈새시장 공략 차원이 아니다. 부족한 간병인과 간호사를 로봇으로 대체하는 전략은 인구감소가 이미 현실화한 일본 정부가 국운을 걸고 벌이는 산업이다. 내각부 고령화사회백서에 따르면 2017년 15~64세 현역세대 2.2명이 65세 이상 고령자 1명을 부양하던 일본 사회는 2065년이 되면 1.3명이 1명을 부양해야 한다.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30%를 넘는 2030년이면 필요한 간병인의 수가 86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현재 130만명인 일본의 간병인력을 감안하면 730만명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간병인력을 무작정 늘릴 수도 없는게 일본의 고민이다. 현재 6713만명인 일본의 취업자수는 매년 64만명씩 줄고 있다. 간병인력이 860만명이면 일본 노동인구 10명 중 1명이 간병인이라는 의미다. 미래산업 분야에서 활약할 인력도 부족한 일본으로서 노동력의 10%가 간병인이 되는 건 국가적인 손실이다. 야노 가즈히코 미즈호종합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에서 간병인은 낮은 임금을 받는 직군이어서 간병인 증가는 저임금자 비중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해 사회격차를 악화시키는 사회문제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 2030년까지 저출산·고령화가 야기하는 여러가지 제약을 해결하겠다는 신산업구조비전을 발표했다. 구체적인 4대 전략 가운데 하나가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간병로봇으로 2035년까지 860만명에 달하는 간병인 수요를 ‘제로’로 만든다는 것이다. 간병인이 필요한 환자와 노년층 숫자를 줄여 간병수요 자체를 억제하는 전략도 추진한다. 각각 9년과 12년인 평균수명과 건강수명(병원 치료에 의존하지 않고 노동이 가능한 수명)의 차를 5년씩 줄여 생애현역사회를 실현한다는 전략이다. 당장 내년까지 간병수요를 60만명 줄인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당뇨 등 생활습관병을 예방하는 웨어러블 건강기기와 관리 서비스, 보험, 건강식품 등 관련 산업을 현재 5조5000억엔에서 2030년까지 10조엔 이상으로 키울 계획이다.

저출산·고령화 극복기술을 미래 먹거리로 키운 건 일본이 전세계에서 가장 오랫 동안 ‘늙어가는 사회’와 싸워 온 국가이기 때문이다. 1995년과 2014년 세계 최초로 고령사회(65세 인구가 전체의 14%를 초과하는 사회)와 초고령화 사회(65세 인구비율 21% 초과)에 진입한 일본은 지난 4반세기 동안 고령화와 싸워왔다.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낸 해결책들이 어느새 하나의 산업으로 싹을 틔운 것이다. 2004년 연금제도도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일찌감치 개혁했다. 급여의 13.58%였던 연금 보험료율을 매년 0.354%씩 올려 2017년에 18.3%까지 높인 뒤 고정시키고 지급액은 57.7%에서 2023년 50.2%까지 단계적으로 낮추기로 했다.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출산율이 감소하면 그에 맞춰 지급하는 연금액을 자동적으로 삭감하는 ‘거시경제 슬라이드’의 도입은 부족한 연금재정 고갈을 늦추는 획기적인 제도로 평가받는다. ‘돈은 우리가 내고 연금은 노인들이 타느냐’는 세대 갈등도 어느 정도 해소했다.

고령화 극복 기술을 미래산업으로 키우는 사례는 의료현장에서도 나타난다. 2016년 기준 일본의 간호직원은 166만명이다. 초고령화의 진전에 따라 2025년이면 13만명에 달할 간호사 부족문제를 정보통신(IT)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의료’로 넘는다는 복안이다. 파낙소닉은 약과 검사체를 자동으로 운반하는 자율반송형로봇 ‘호스피(HOSPI)’를 개발했다. 기계 전문업체인 크로리는 의료약품의 밀봉과 수술기기의 정리 등 세세한 작업이 가능한 로봇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4차산업 기술을 활용한 현장 자동화 의료제품의 시장은 2025년까지 1685억엔 규모로 커져 2016년보다 2.2배 늘 전망이다.

전세계적으로 ‘로봇을 활용한 자동화가 인간의 일자리를 뺏을 것’이란 우려가 높지만 인구가 줄어드는 일본 사회는 반대다. 일본 취업정보회사인 디스코의 니도메 마사로 사장은 “일손이 부족한 일본은 로봇을 이용한 자동화를 반기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