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의 경쟁자’ 일본이 다시 뛰고 있다. 사회 전체가 들떠있다는 느낌이 들 만큼 일본 경제 전반에 활력이 넘쳐나고 있다. 경쟁력을 되찾은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고, 일본 청년들은 좋은 일자리를 골라가며 잡고 있다. 오랫동안 일본 국민의 어깨를 짓누르던 3대 불안(고용-임금-노후)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어디를 가나 새로운 시대,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를 엿볼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은 물론 노조도 한마음이다. 초대형 국가 이벤트의 타이밍도 절묘하다. 일본 정부는 오는 5월 새 일왕(日王) 즉위에 따른 연호(年號) 변경과 내년 7월 열리는 도쿄올림픽을 일본의 자긍심과 첨단 기술력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로 삼을 계획이다. 2020년 도쿄올림픽 때는 나리타공항과 도쿄의 선수촌을 오가는 자율주행 버스와 택시를 운행하기로 했다.
한국경제신문 특별취재팀은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일본 최대 전시장인 도쿄빅사이트에서 열린 첨단기술 박람회를 둘러봤다. 자율주행자동차, 로봇, 공장 자동화 등을 주제로 한국 코엑스의 2.6배 전시공간에서 열린 박람회에는 일본 국내외에서 13만 명 이상의 기업인이 몰렸다. 왼쪽부터 정영효 기자, 김동욱 도쿄 특파원, 이심기 정치부장, 김수언 국제부장, 조일훈 부국장, 임락근 기자, 유병연 마켓인사이트부장, 정태웅 레저스포츠산업부장, 서정환  기자.  /도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특별취재팀은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일본 최대 전시장인 도쿄빅사이트에서 열린 첨단기술 박람회를 둘러봤다. 자율주행자동차, 로봇, 공장 자동화 등을 주제로 한국 코엑스의 2.6배 전시공간에서 열린 박람회에는 일본 국내외에서 13만 명 이상의 기업인이 몰렸다. 왼쪽부터 정영효 기자, 김동욱 도쿄 특파원, 이심기 정치부장, 김수언 국제부장, 조일훈 부국장, 임락근 기자, 유병연 마켓인사이트부장, 정태웅 레저스포츠산업부장, 서정환 기자. /도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자신감도 충만하다. 일본 최대 경제단체를 이끄는 나카니시 히로아키(中西宏明) 게이단렌 회장은 “과거 버블 경제가 붕괴되면서 거의 20년간 성장 없는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안정적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차세대 기술 전시장을 가득 메운 기업인, 도시의 골목 곳곳을 빼곡히 메운 자영업자들, 창업 전선에 나선 대학가 모두 비슷한 목소리였다.

체감 경기의 바로미터로 통하는 도쿄 도심은 사무실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고층 빌딩이 줄지어 들어서며 완전히 새로운 스카이라인을 형성했다. 그런데도 공실률은 2% 이하다.

60代 일본경제, 40代 활력으로 뛴다…한경 데스크·기자 현지 특별취재
일본 경제의 불안 요인이 완전히 걷힌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선진국 중에서 가장 낮은 경제성장률과 물가 상승률, 기대만큼 늘지 않는 임금과 가계소득, 저조한 내수 경기 등은 여전히 취약한 고리로 꼽힌다. 일본은 성장률이 1% 안팎(2018년 0.9% 추정)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지난 74개월간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긴 경기 확장 국면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2016년 《불황터널: 진입하는 한국, 탈출하는 일본》을 펴낸 박상준 와세다대 국제교양학부 교수는 “지금 일본을 보면 마치 60대 장년이 40대의 체력과 활력으로 뛰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하강하던 거대 경제대국이 오랜 절치부심 끝에 다시 뛰고 있는 것은 유념해서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韓·日 관계 최악이지만…활력 되찾은 日 경제 주목해야

지금 일본의 활력은 정부와 기업의 노력 덕분이다. 일등공신은 알려진 대로 아베노믹스다. 2012년 말 집권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이듬해부터 일본 경제 부활을 위해 ‘프로비즈니스(pro-business)’를 앞세운 정책을 본격화했다. 금융 완화를 통한 저금리 및 엔저(低) 유도, 확장적 재정정책, 법인세 인하와 규제 완화가 핵심 기조였다.

정부가 앞장서자 기업들이 화답했다. 소니 파나소닉 도요타 히타치 등 일본 대표 기업은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쳐 세계 시장에 재등장하고 있다. 소니는 TV 메이커가 아니라 이미지센서와 콘텐츠 회사로 탈바꿈했고, 파나소닉도 전자기업이 아니라 세계 최대의 자동차 배터리기업이자 메이저 자동차 부품사로 다시 태어났다.

2010년 가속페달 결함으로 세계 시장에서 1000만 대의 차량을 리콜하며 침몰하는 듯했던 도요타도 완벽히 부활했다.

도쿄대를 비롯한 일본 유명 대학에서도 창업 바람이 불고 있다. 과거엔 직업 안정성이 중시됐지만 최근에는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겠다’는 공대생의 창업이 늘고 있다고 가가미 시게오 도쿄대 교수는 전했다. 지난해 기업가치가 100억엔(약 1300억원)을 초과한 일본 스타트업은 47개사로 전년보다 두 배 넘게 늘어났다.

일본은 1992년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달러에 진입했다. 지난해 3만달러 벽을 넘은 것으로 추산되는 한국보다 26년이나 앞섰다. 전자와 자동차, 석유화학 등 한국의 주력 산업은 대부분 과거 일본의 주력 산업이었고 고령화와 인구 감소 등의 문제도 한국에 앞서 겪고 있다. 지금 한·일 관계가 최악이지만 한국경제신문은 일본이 어떻게 경제 활력을 되찾았고 어떤 전략으로 미래로 달려가는지를 현지 취재했다.

도쿄=김수언 국제부장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