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많은 돈을 들여 주한미군을 주둔시키는지 모르겠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한국은 가장 강력한 자유의 보루다. 우리는 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이걸 하고 있다.”(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부 장관)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이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에서 전한 올 1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한 장면이다.

매티스 장관 사퇴가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매티스 장관은 ‘동맹 중시파’로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와 거리를 둬왔다. 그의 사임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지금보다 더 ‘미국 우선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한미군 분담금 늘어날 수도

매티스 장관 사퇴가 당장 주한미군의 지위 변화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미 연방 상·하원은 지난 8월 의회 승인 없이 주한미군을 2만2000명 이하로 줄이는 걸 금지한 국방수권법을 통과시켰다. 현재 주한미군 병력은 2만8500명이다. 단순 계산하면 6500명까지 감축할 수 있지만, 군 안팎에선 정규 교대근무와 훈련 등으로 빠지는 인원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주한미군 방위비 부담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달 초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분담금을 두 배로 올리길 원한다”고 보도했다. 한국은 주한미군 유지비로 연 8억3000만달러(약 9000억원)를 부담하고 있다. 주한미군 주둔비의 약 절반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공식적으로 한국에 ‘50% 증액(연간 8억3000만달러→연간 12억달러)’을 요구하고 있다.

매티스 장관은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과 함께 재정 문제에 앞서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설득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새 합참의장에 마크 밀리 육군참모총장을 지명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방위비 분담 압박이 더 세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지난 6월12일 미·북 정상회담 이후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발표한 데서 보듯 트럼프 대통령은 ‘전략’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뜻을 따르는 사람을 후임 장관으로 임명하지 않겠냐”며 “(방위비 협상 등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맹 중시’ 충고한 매티스

매티스 장관은 2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사임 서한에서 “동맹을 중시하라”고 충고했다. 뒤집으면 매티스 장관이 보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그동안 국내에서도 한·미 동맹의 견고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계속 나왔다.

"주한미군 철수 안 된다"던 매티스의 퇴진…韓·美 동맹 어디로?
매티스 장관은 서한에서 “우리(미국)의 힘은 독특하고 포괄적인 동맹·우방 시스템의 힘과 불가분의 관계”라며 “동맹을 강화하고 동맹에 존중을 보이지 않으면 우리의 이익을 지킬 수 없다”고 했다. 또 “당신처럼 나도 미군이 ‘세계의 경찰’이 돼선 안 된다고 말해왔다”면서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29개 회원국과 이슬람국가(IS) 격퇴에 참여한 74개 동맹국을 언급하며 동맹을 강조했다.

매티스 장관은 이어 “우리는 전략적 이해관계에서 갈수록 긴장이 커지는 나라들 앞에서 단호하고 모호하지 않아야 한다”며 “중국과 러시아는 세계를 그들의 권위주의적 모델과 비슷하게 만들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더 세지는 미 ‘일방주의’

매티스 장관 사임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전보다 더 ‘미국 일방주의’로 기울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갑자기 ‘IS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선언하며 시리아 주둔 미군 2000명에 대한 철수를 명령했다. 미국과 함께 IS와 싸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동맹국들은 뒤통수를 맞았다.

미국 정치권도 반발하고 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내정자는 “시리아 철군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비판했다. 미군이 시리아를 떠나면 러시아가 득세할 것이기 때문이다.

친(親)트럼프 성향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마저 “트럼프의 맹목적인 결정에 기습당했다”며 청문회를 열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때부터 미국이 다른 나라에 끼어들 이유가 없고, 돈도 많이 든다며 시리아 철군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동안 제대로 공론화하지 않다가 갑자기 철수 명령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1만4000명 중 수천 명의 병력을 감축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