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에서 급성장했던 중국 화웨이가 급속도로 입지를 잃어가는 모습입니다. 미국 주도로 중국산 통신 장비에 대한 정보유출 의혹이 불거지면서 화웨이, ZTE 등 중국산 장비를 배척하는 움직임이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웨이가 비교적 굳건하게 뿌리내렸다고 평가받았던 일본 시장에서도 중국산 통신장비 퇴출 움직임이 발 빨라지는 모습입니다. 그동안 적극적으로 화웨이와 손잡았던 소프트뱅크마저 화웨이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통신사업자 소프트뱅크는 현재 사용 중인 4세대(4G) 휴대폰용 통신장비에서도 화웨이 등 중국산 장비를 없애기로 방침을 굳혔습니다. 소프트뱅크는 순차적으로 에릭슨과 노키아 등 북유럽산 제품으로 통신설비를 교체한다는 계획입니다. 불과 두어 달 전만해도 화웨이 장비를 갖춘 신형 기지국을 중심으로 화웨이 장비 주도 5세대(5G) 이동통신 시설 구축을 준비했던 것에 비하면 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입니다.

그동안 소프트뱅크는 일본 대형 통신사 중에선 유일하게 4세대(4G) 통신장비 일부를 화웨이와 ZTE 제품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2016년 화웨이는 저가를 앞세워 일본 통신시장에 진출했고, 소프트뱅크도 저가 장비 도입을 바탕으로 월 5970엔에 50기가바이트까지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요금제를 선보이는 등 두 회사가 공생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소프트뱅크는 최근까지 화웨이 장비를 도입한 기지국을 늘려 왔습니다. 2015~2017년도에 소프트뱅크가 기지국에 투입한 금액은 총 767억 엔이었는데 이중 화웨이 장비 비용이 206억 엔, ZTE가 35억 엔이었습니다. 2017년 이후 신설된 기지국에선 금액기준으로 화웨이 장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60%에 달했습니다.

지난해 말 현재 화웨이의 일본 통신 시장 점유율은 13% 정도 됐는데 당초 화웨이는 소프트뱅크와의 ‘돈독한’ 관계를 바탕으로 미국의 공세를 피해 일본 시장을 확대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됐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주도로 세계 각국에서 화웨이를 겨냥한 제재조치가 늘면서 소프트뱅크도 태세전환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특히 내년 초부터 본격화될 5G 설비투자를 앞두고 결단을 빨리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프트뱅크는 2019년 실험 서비스를 거쳐 2020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5G 서비스도 화웨이와 손잡고 준비해왔습니다. 하지만 중국산 통신장비 사용을 더 고집했다가는 미국·일본 정부와 거래할 수 없게 됨에 따라 화웨이와의 결별을 선택했다는 분석입니다.

이와 함께 소프트뱅크의 미국 사업에 미칠 영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2020년 8 월 이후 화웨이 등 중국 5개사 제품을 사용한 전 세계 기업과 거래하지 않을 방침을 밝힌 바 있습니다. 소프트뱅크의 미국 통신 자회사 스프린트를 T모바일US와 합병시킬 계획인 소프트뱅크로선 미국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한편 일본 정부는 정보통신 등 14개 분야 민간 기업이 내년부터 장비를 조달할 때 정보유출 방지를 의무화하는 지침을 마련키로 했습니다. 정부 뿐 아니라 민간 기업도 화웨이와 ZTE 등 중국 정보기술(IT) 업체를 견제하도록 한 것입니다. 소프트뱅크 외에 NTT도코모와 KDDI, 라쿠텐 등도 5G장비에서 중국산 사용을 보류키로 했습니다.

이래저래 화웨이는 세계 각국에서 팔다리가 모두 잘리고, 점점 더 궁지로 몰리는 모습입니다. 마지막까지 화웨이와의 관계를 고려했던 소프트뱅크까지 태도를 바꾼 것을 보면 일본기업들의 이해득실 ‘계산’은 이미 끝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