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비자를 따로 발급받지 않고도 가장 많은 나라를 방문할 수 있는 여권은 어느 나라 것일까요. 올 들어 일본여권 소지자가 세계 190개국에서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어 ‘여권 파워’가 가장 강한 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일본인 중 여권을 소지한 경우가 4명 중 한 명꼴에 불과해 제대로 여권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여권 소지 분야에서도 일본인 특유의 ‘내향성’이 반영됐다는 분석입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지난달 초 국제 교류단체인 영국 헨리앤파트너스가 발표한 ‘헨리 패스포트 인덱스’에서 일본은 190개국을 비자 발급 없이 방문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조사대상 199개국 중 부르키나파소, 기니 등 아프리카 일부 지역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 국가를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는 것입니다. ‘헨리 패스포트 인덱스’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통계를 활용해 전 세계 199개국 227개 공항을 대상으로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는 국가 수를 합산해 작성됩니다.

일본은 최근 10여 년간 ‘여권 파워’평가에서 5~6위권을 오갔지만 올 들어 미얀마 등에서 비자를 면제받아 처음으로 단독 선두를 차지했습니다. 일본의 뒤를 이어 싱가포르가 189개국으로 2위를 차지했습니다. 한국과 독일, 프랑스 여권이 188개국에서 비자발급을 면제받아 최상위권으로 꼽혔습니다.

하지만 사상 첫 ‘여권 파워 1위’ 등극에도 일본 언론은 밝은 표정만은 아닙니다. 일본인 중 여권 소지비율이 25%수준에 멈춰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여행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로 출국한 일본인 비율은 14.4%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를 큰 불편 없이 방문할 수 있는데도 국민 대다수가 이를 활용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국민의 여권 소지율이 40% 정도이고 미국이 30%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일본 국민의 여권 소지율이 크게 떨어지는 편입니다.

해외 여행 뿐 아니라 일본인 해외 유학생도 감소 추세고, 직장인들도 해외 근무를 선호하지 않는 모습이 뚜렷합니다. 이 같은 일본인의 특성은 한·일 관광객 숫자에서도 확인됩니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한국 관광객은 714만 명에 달했던 반면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은 231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인구수 차이와 경제력 격차를 감안하면 일본인들이 좀처럼 해외로 나가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일본인 특유의 내향성이 ‘여권 파워 1위’의 의미를 적잖게 반감시키는 듯한 모습입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