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이 “유럽은 우파 포퓰리즘을 막기 위해 이민 유입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2016년 미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섰으나, 반(反) 이민을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에게 패했다. 당시 클린턴 전 장관은 “트럼프의 이민 정책은 미국을 분열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랬던 그가 이민 억제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다.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22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은 이민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며 “이민이 (유권자들의) 분노를 촉발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민자와 기존 국민 간 문화적 충돌이 일어나고 이민자에 대한 복지 지출이 증가하면서 유권자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에도 이민에 대한 반발이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관대한 이민 정책을 존경한다”면서도 “유럽이 더이상 이민자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럽은 지난 몇년 간 중동과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대규모 난민이 유입되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2015년엔 100만명이 넘는 난민이 유럽 외부에서 몰려왔다.

이 영향으로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에 반 난민을 내세운 극우 성향 정권이 들어섰다.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에서도 극우 정당이 세를 키웠다. 이탈리아 그리스 등 난민의 기착지가 된 지중해 연안 국가들이 난민 수용에 따른 부담을 유럽 국가들이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EU 회원국 간 갈등도 깊어졌다.

클린턴 전 장관은 “우리가 이민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극우세력이 정치적으로 악용할 수 있다”며 자신이 2016년 대선에서 패한 배경에도 이민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반 이민 정책에 대해선 “이민을 정치적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며 “언론과 정적을 탄압하거나 러시아로부터 정치적·재정적 도움을 받지 않고도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비난했다.

가디언은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와 마테오 렌치 전 이탈리아 총리도 최근 인터뷰에서 “이민 문제가 중도 성향 정치세력의 큰 과제가 됐다는 점에 동의했다”고 전했다. 블레어 전 총리는 “유권자들이 이민 문제를 걱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답해야 한다”며 “그러지 않으면 포퓰리즘이 활동할 공간이 커진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중도좌파 정치세력이 실패하고 있는 이유를 찾기 위해 이들 정치인을 인터뷰했다”고 덧붙였다.

‘친(親) 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도 가디언의 클리턴 전 장관 인터뷰를 홈페이지 머릿기사로 올리는 등 비중있게 전했다. 폭스뉴스는 “클리턴 전 장관, 블레어 전 총리, 렌치 전 총리가 포퓰리즘 지도자들이 성공한 이유를 정확히 지적하지 못했다”고 비꼬았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