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이 나갈 것 같은 청천벽력이다.”(프랑스 일간 르피가로) 지난 19일 오후 4시35분께 도쿄 하네다공항에 착륙한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얼라이언스(르노·닛산·미쓰비시자동차 연합) 회장의 개인 제트기에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곤 회장은 황급히 기내 창문을 모두 내리고 잠시 얘기를 나눈 뒤 도쿄지검으로 이동했고 불과 한 시간 만에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혐의는 50억엔(약 500억원)의 보수를 축소 신고하고 자택 구입 자금을 회사에 부담시켰다는 것이었다.

오후 10시 요코하마의 닛산 본사에서 사이가와 히로토 닛산자동차 사장이 연 기자회견에선 ‘장기 통치’ ‘폭군’ ‘쿠데타’ 같은 살벌한 단어가 쏟아져나왔다. 프랑스 르노와 일본 닛산 및 미쓰비시자동차를 이끌던 곤 회장이 검찰에 체포되면서 르노·닛산얼라이언스의 존속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프랑스 르노와 일본 닛산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곤 회장 쳐내고 경영 주도권 잡기…닛산의 계획된 고발?
전격적인 ‘곤 숙청’ 작업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얼라이언스 회장 체포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할 만큼 기습적으로, 그리고 신속하게 이뤄졌다. 사이가와 사장은 “오래 지속된 곤 회장 통치체제의 어두운 측면, 권좌에 오래 앉아서 발생한 폐해가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곤 회장이 폭군이었냐’는 질문에는 “공과의 양면이 있다”며 부인하지 않았다.

닛산자동차는 곤 회장이 20년 가까이 경영을 이끌며 부활시킨 회사다. 그런데도 닛산은 미리 준비했던 것처럼 곤 회장과의 선긋기에 나섰다. 22일 이사회를 열어 곤 회장을 닛산 회장직에서 해임키로 했다. 미쓰비시자동차도 행보를 같이했다. 곤 회장으로선 등 뒤에서 칼에 찔린 듯한 모습이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도쿄지검 특수부는 보수 축소 신고를 문제 삼고 있다. 2011년 6월~2015년 6월 곤 회장의 누적 총보수는 99억9800만엔(약 998억4300만원)이었는데 50억엔 가까이 줄여 신고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를 체포하는 데 보수 축소 신고 혐의가 적용된 것이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닛산자동차 측은 “내부 고발에 따른 조사 결과 부정행위가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수년 동안 충분히 인지할 수 있던 내용을 시기를 맞춰 터뜨렸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도쿄지검과 닛산자동차가 언론에 흘린 곤 회장의 혐의도 망신주기용 폭로라는 지적도 있다.

경영 주도권 다툼 가능성

닛산 측이 곤 회장 개인 비위를 명목으로 르노·닛산 간 권력 관계의 틀을 흔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르노와 닛산, 미쓰비시자동차의 3사 연합은 상호 지분율이 과반에 미치지 못하는 불안정한 구조로 곤 회장 개인에게 권한이 집중돼 있다.

1999년 경영 위기에 처했던 닛산에 르노가 출자하면서 르노가 닛산 지분 43.4%를 보유하고 있고, 닛산은 르노 지분 15%를 갖고 있다. 닛산은 미쓰비시 지분 34%도 보유하고 있다. 이들 3개 회사 회장직을 곤 회장이 겸임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닛산 측이 곤 회장 비리를 전략적으로 공개해 이용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며 “프랑스가 쥐고 있는 르노·닛산얼라이언스의 주도권을 일본이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카니시 다카기 나카니시자동차산업리서치 대표는 “지금까지 곤 회장 개인에 의해 3개 자동차 회사가 연결돼 있었지만 곤 회장의 실각으로 3사 간 제휴 강화 시나리오가 무산됐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은 “닛산 지분 40% 이상을 보유한 르노는 닛산에 대한 의결권을 가진 반면 닛산은 르노에 대한 의결권이 없어 불만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행정부가 르노가 닛산을 자회사화하는 식의 합병 또는 경영통합을 적극 주문하면서 일본의 경계심이 커졌다는 지적도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곤 회장이 2015년 프랑스 정부의 의향을 받아들여 르노와 닛산의 완전한 경영 통합을 추진한 것에 대해 사이가와 사장 측이 강하게 경계했다고 보도했다. 곤 회장이 르노에 유리한 결정을 내리면서 품질 결함 등의 문제는 일본 측 책임으로 돌렸다는 불만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 전격적으로 벌어진 곤 회장 조사에 프랑스 정부도 당황한 기색이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은 현지 방송에 출연해 “곤 회장은 르노를 이끌 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며 “임시 지도체제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르노 지분 15.01%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도쿄=김동욱 특파원/장창민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