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유럽연합(EU)은 내년 3월29일 영국이 EU를 탈퇴하더라도 2020년 말까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효력을 유예한다는 내용의 협상 초안에 합의했다. 하지만 영국 내각에서 일부 각료가 초안에 반발해 사퇴를 밝히는 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의회 승인을 받지 못하면 영국은 EU와 아무런 합의 없이 탈퇴하는 ‘노 딜 브렉시트’로 갈 가능성이 높아 상당한 혼란이 불가피해진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14일(현지시간) “내각이 EU 탈퇴 협정 초안과 미래 관계에 대한 정치적 선언에 동의하기로 공동 결정했다”고 밝혔다. 초안에 대해 내각 승인을 얻었다는 의미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도 이날 영국을 제외한 27개 회원국에 서한을 보내 “영국과 결정적 진전을 이뤘다”고 전했다.

영국과 EU는 이제 서명 절차에 들어간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오는 25일 EU 정상회의를 소집했다. 합의문 서명 이후 양측 의회는 12월 동의를 구하는 비준 절차를 밟는다.

585쪽 분량의 합의문 초안에 따르면 영국은 내년 3월29일 EU를 탈퇴하지만 2020년 말까지 EU 탈퇴 효력이 유예되는 전환기를 보낸다. 영국은 EU 단일시장에 남아 규제도 받는다. 다만 EU 의사결정 과정엔 참여할 수 없다.

영국은 또 ‘이혼 합의금’으로 2020년까지 390억파운드(약 57조원)를 내야 한다. 최대 쟁점이던 아일랜드 국경 문제도 영구적인 새 무역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영국 전체를 EU 관세동맹에 잔류시키도록 합의했다.

하지만 영국 보수당 강경파는 협상 초안에 반발해 의회 비준까지는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도미니크 랍 브렉시트부 장관은 메이 총리가 성명을 발표한 지 하루 만에 “협상 초안에 지지할 수 없다”며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에스더 맥베이 노동연금부 장관과 샤일레쉬 바라 북아일랜드부 부장관 등도 줄줄이 사퇴를 표명했다. 파이낸셜타임스 등은 메이 총리가 내각의 ‘만장일치’가 아니라 ‘공동 결정’이라는 표현을 쓴 데 주목했다.

BBC는 보수당 고위관계자 말을 인용, “이번 합의에 불만을 품은 당내 브렉시트 강경파가 메이 총리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요청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