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英, 사우디에 휴전 압박…'지렛대 효과' 노림수 분석도

사우디아라비아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사건이 세계 최악의 인도주의적 비극으로 손꼽히는 예멘 내전의 휴전을 가져올 수 있을까.

카슈끄지 사건에 사우디 왕실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국제사회에 팽배해 사우디가 궁지에 몰린 가운데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 편을 들며 무기를 제공해온 미국과 영국이 불쑥 휴전을 압박하고 나서면서 이러한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와 CNN방송, 워싱턴포스트(WP) 등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휴전 관련 발언에 대해 나란히 이러한 의미를 부여했다.

사우디가 지원하는 예멘 정부와 이란이 지원하는 후티 반군이 2015년부터 충돌하고 있는 이 내전에서 사우디 주도 연합군의 어린이 통학버스 폭격 등 민간인 무차별 살상에 대한 국제적 비난이 드세다.

매티스 장관은 이날 예멘에서의 공습을 멈추고 30일 안에 평화협상을 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마틴 그리피스 유엔 예멘특사가 스웨덴에서 양측을 모아 협상을 할 것이라고 했고, 폼페이오 장관도 양측이 공습 등 적대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폼페이오의 발언에 대해 제러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도 영국BBC와의 인터뷰에서 "휴전 촉구는 '매우 환영할만한 발표'라고 맞장구를 쳤다고 NYT가 전했다.

그리피스 특사도 매티스 장관의 발언과 관련해 감사의 뜻을 표현하면서 한 달 이내에 양측간 대화를 소집시킬 의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피스는 "모든 (내전의) 당사자들이 이 기회를 붙잡기를 바란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일부 중동 전문가들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카슈끄지 사건의 배후로 의심받으면서 국제적인 신뢰 위기에 몰린 시점과, 예멘의 휴전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본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행정부에서 일했던 베테랑 외교관인 데니스 로스는 "외교 작업의 핵심 사안중 하나는 지렛대(leverage)"라면서 "폼페이오는 사우디에 대해 이전에 가지고 있지 못했던 지렛대를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카슈끄지 피살 사건, 최악의 예멘 내전 휴전 이끌까
미국 정부가 예멘 휴전을 제안한 것은 미 의회의 공세를 저지하고 사우디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부분적으로 있을 것이라고 NYT는 해석했다.

카슈끄지 사건과 관련, 미 의회 무소속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제프 플레이크 공화당 상원의원은 카슈끄지가 피살된 것이 사실이면 미국은 사우디에 대한 무기 판매와 예멘 내전의 개입을 중단해야 한다고 지난달 중순 주장한 바 있다.

WP는 국제사회로부터 사우디 정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 카슈끄지 사건 이후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가 과연 어떠한 행동을 하는지 주목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예멘 내전 과정에서 사우디가 민간인 살상과 인권 침해 사실 등에 대해 미국 측에 통보하는 내용이 신빙성이 있느냐에 대한 의혹이 일고 있다고 WP는 덧붙였다.

3년 반을 넘게 끌고 있는 예멘 내전은 1만명에 가까운 민간인 사상자를 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의 휴전 압박에 대해 후티 반군이 교전을 중단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줄지는 불확실하고, 사우디 측도 휴전 조처를 할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NYT는 전했다.

한편, 미국은 카슈끄지 사건을 지렛대 삼아 사우디와 카타르 간의 불화도 중재하려는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CNN이 분석했다.

사우디를 주축으로 한 걸프협력이사회(GCC) 소속 국가들은 2017년 6월 카타르가 이란과 이슬람주의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외교 관계를 중단하고 육로를 봉쇄하는 등 카타르를 고립하고 있다.

중동에서 가장 큰 미군 기지이자 이슬람국가(IS) 공습 거점인 알우데이드 공군 기지를 카타르에 두고 있는 미국은 사우디와 카타르간 중재를 모색해 왔다.

자국의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살해된 카슈끄지 사건과 관련해 사우디를 몰아붙이고 있는 터키는 카타르 편을 들고 있다.
카슈끄지 피살 사건, 최악의 예멘 내전 휴전 이끌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