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와 그리스는 2010~2011년 재정위기를 겪었다. 경제규모 대비 과중한 재정 지출이 주된 원인이었다. 이들 국가는 연금을 삭감하고 공무원 수를 줄이는 등 고통스러운 긴축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최근 세계 금융시장에서 이들 국가의 재정위기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연금 지급을 포함한 각종 복지정책을 확대하며 재정을 다시 방만하게 운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최근 연금 수급 연령을 67세에서 65세로 앞당기고 저소득층에 월 780유로(약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안을 포함한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해 유럽연합(EU)에 제출했다. 재정위기가 한창이던 2011년 12월 엘사 포르네로 당시 복지부 장관이 눈물까지 쏟으면서 발표했던 연금 축소안이 원위치로 돌아갔다.

유럽연합(EU)는 처음으로 예산안 승인을 거부했고 다음달 13일까지 수정안 제출을 요구했다. 재정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내로 관리하도록 한 권고 사항을 어겼기 때문이다. EU는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 포르투갈, 슬로베니아에도 재정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며 이 같은 경고를 담은 서한을 발송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복지지출 증가로 이탈리아가 내년도 GDP 대비 2.7% 재정적자를 낼 것으로 추산했다. 재정적자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탈리아 국채에 대한 시장 신뢰가 낮아지는 분위기다. 국채금리는 4년 만에 최고(채권값 하락)를 기록하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지난 2일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연금 규모를 지금처럼 유지하는 안을 함께 내놨다. EU는 GDP 대비 3.5% 재정흑자를 달성할 수 있다는 그리스 정부 주장을 받아들여 이 예산안을 승인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그리스 재정이 다시 불안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리스는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20.9%나 돼 연금 지출 부담이 크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최저임금과 공무원 임금도 올리겠다고 밝혔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이탈리아 경제가 위기에 몰려도 ECB는 더 이상 안전판 역할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도 “위기는 한 번으로 충분하다”며 “제2의 재정위기는 피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