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슈끄지 피살 사건으로 궁지 몰린 사우디, 출구전략 모색

자국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피살 사건에 대해 애초 모르쇠로 일관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입장이 급변하고 있다.

뒤늦게 우발적 사고라는 조사 결과를 내놓은 데 이어 이번에는 '계획적 살해'를 언급했다.

사우디 왕실에 비판적인 카슈끄지가 살해됐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국제사회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압박이 커지고, 자신들을 감싸주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도 여기에 가세하자 궁지에 몰린 사우디 정부가 일단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을 인정하고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사우디 검찰은 25일(현지시간) 국영 방송을 통해 "터키 측 정보에 따르면 용의자들이 사전 계획해 의도적으로 저지른 사건"이라고 밝혔다.

사우디 검찰이 사우디와 터키 합동실무조사단의 제공 정보를 바탕으로 용의자들을 조사하는 가운데 이런 내용을 정부 매체를 통해 발표한 것은 계획적 범죄라고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사우디의 실세 무함마드 빈 살 만 왕세자는 24일 한 행사에서 "카슈끄지 살해는 정당화될 수 없는 흉악한 범죄"라고 규정했다.
'모르쇠'→"우발적 사망"→"계획적 살해"…말 바꾸는 사우디
사우디 정부는 지난 2일 터키 이스탄불 주재 자국 총영사관에 들어간 카슈끄지가 살해·유기됐다는 의혹이 제기됐을 때만 해도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했다.

그러나 카슈끄지가 사우디 암살팀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터키 경찰의 조사 내용이 터키와 미국 언론 등을 통해 잇따라 보도되며 파문이 커지자 사우디는 사건 발생 18일만인 지난 20일 카슈끄지의 피살을 확인했다.

당시 사우디 검찰은 카슈끄지가 총영사관에서 용의자들과 대화를 하다가 주먹다짐이 벌어져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사우디 검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 자국인 18명을 체포해 조사 중이다.

하지만 이들 용의자 가운데 무함마드 왕세자와 가까운 인물 등이 포함돼 있는 데다가 사우디 검찰이 카슈끄지 시신의 소재를 밝히지 않아 우발적 사고라는 발표는 오히려 의문을 키웠다.

더욱이 카슈끄지가 고문을 받고 잔혹하게 살해되는 상황이 녹음된 기록을 터키 경찰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상황이었다.

이후 세계 각국의 진상 규명 촉구, 독일을 중심으로 한 대사우디 무기수출 중단 추진, 일부 국제법 전문가의 국제사법재판소 회부 주장 등 반사우디 기류가 한층 강해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지난 23일 이번 사건에 대해 "사상 최악의 은폐"라며 사우디를 강도 높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미 국무부는 이 사건의 대응 조치로 사우디 정부 인사 21명의 비자 취소에 나섰다.
'모르쇠'→"우발적 사망"→"계획적 살해"…말 바꾸는 사우디
사우디 검찰의 '계획적 살해' 발표는 지나 해스펠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이번 주 터키를 방문, 문제의 살해 상황 녹음 내용을 들은 이후에 이뤄졌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해스펠 국장은 25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터키의 카슈끄지 사건 수사 내용을 보고했다.

이 사건에 대한 사우디의 설명이 바뀐 것은 사우디가 위기 탈출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AP 통신은 지적했다.

새로운 사실이 추가로 더 드러나 벼랑 끝에 서기 전에 용의자들의 혐의를 빨리 확정 짓고 처벌해 국제사회의 대사우디 압박과 제재를 누그러뜨리며 무함마드 왕세자의 연루설을 차단하려는 것이 사우디의 의도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