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입에 달린 사우디 왕세자 운명…'아랍의 봄'서 관계 틀어져

터키에서 벌어진 사우디아라비아 유력 언론인 사망 사건이 일파만파로 확산하면서 양국의 두 지도자에게 엇갈린 운명을 예고하고 있다.
카슈끄지 비극이 부른 갈림길…에르도안 지역 맹주, 빈 살만은
터키와 사우디는 전통적으로 서방으로부터 지역의 실세로 대접을 받아왔지만, 두 나라 관계는 2010년 말 시작된 '아랍의 봄'이후 사실상 적대 관계로 빠져든 상태였다.

하지만 사우디 언론인 카슈끄지 피살 사건은 두 나라 사이, 또 양국 지도자 사이의 균형추를 흔들어놓고 있다고 가디언과 블룸버그 통신이 23일 보도했다.

2003년 총리직에 오른 뒤 권력을 유지해온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아랍의 봄' 사건을 접하면서 지역에서 자신과 뜻이 맞는 정부들이 활짝 꽃피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2013년 이집트에서 무슬림 형제단 출신의 첫 직선 대통령인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이 군 출신 압델 파타 엘시시의 쿠데타로 축출되면서 에르도안의 꿈도 사라졌다.

반면 대중의 지지를 받던 무슬림 형제단의 활동을 현존하는 위협으로 간주하던 사우디 등 지역 군주국들과 독재자들은 환호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집트의 엘시시 정부가 "불법적"이라며 타협을 거부하고는 이집트 출신 무슬림 형제단원들에게 도피처를 제공했다.

그러나 사우디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게는 결코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에르도안의 이런 태도는 지역 내 국가들도 갈라놓게 됐다.

터키는 사우디와 관계가 좋지 않은 카타르와 제휴했다.

반면 사우디와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가 반(反)에르도안 진영에 섰다.
카슈끄지 비극이 부른 갈림길…에르도안 지역 맹주, 빈 살만은
그러나 카슈끄지의 비극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은 그동안 정적과 언론인 등을 탄압한 데 따른 국제적인 비판에서 한발 비켜나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를 갖게 됐다.

비록 터키의 민주주의가 흠은 있더라도 어쨌든 사우디보다는 낫다는 점을 부각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반면 빈 살만 왕세자로서는 보수 종교 세력의 반발을 무릅쓰고 여성에게 운전과 축구 경기장 입장을 허용하는 등 파격적인 개혁 정책을 추진하며 서방의 관심을 끌다가 큰 난관에 직면했다.

그는 특히 미국 공화당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을 포함한 일각에서 사우디의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에게 사실상 새로운 후계자를 뽑을 것을 요구할 정도로 위기에 몰렸다.

빈 살만 왕세자는 물론 사우디로서도 미국과의 관계는 물론 서방 주요국과의 관계가 위태로운 지경에 몰렸다.

터키의 한 서방 고위 외교관은 카슈끄지 사건과 관련, "에르도안에게는 신이 준 선물"이라며 서방에 사우디는 믿을만한 파트너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시킬 수 도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에 말했다.

공교롭게도 23일(현지시간) 정오를 즈음해 에르도안 대통령은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카슈끄지 죽음에 관한 "적나라한 진실을 낱낱이 공개하고, 빈 살만 왕세자는 세계의 유력 인사를 불러 모은 국제회의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FII) 개막 연설을 할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