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가 한국에 배치된 후 중국 정부의 보복으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큰 곤욕을 치렀는데요. 작년 말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 정부의 노골적인 보복은 많이 약해졌지만 여전히 한국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1%대로 떨어졌고, 현대·기아자동차는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47만8014대를 판매해 작년 같은 기간보다 판매량이 18%정도 늘었지만 사드 여파가 있기 전인 2016년에 비해선 29%나 줄었습니다. 롯데그룹은 사드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중국 시장에서 철수했습니다.

하지만 사드 한파에도 중국 시장서 큰 폭의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는 한국 기업이 있는데요. 국내 보일러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경동나비엔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지난해 경동의 중국 매출은 약 777억원 규모로, 전년(303억원)보다 두 배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전체 매출에서 중국 실적이 차지하는 비율도 증가했는데요. 작년 전체 매출(6846억원)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11%로, 전년의 5%와 비교해 역시 두 배 정도로 늘었습니다. 올 상반기 매출은 작년 동기보다 40% 증가했지요.

경동나비엔의 성공 비결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12일 베이징에 있는 신공장을 찾았습니다. 베이징의 한인타운으로 불리는 왕징(望京)에서 차로 50분가량 달리니 순이(顺義)공업구에 있는 경동나비엔 신공장이 나타났는데요. 공장에 들어서자 연산 30만대 규모의 1기라인이 한창 시험가동 중이었습니다. 컨베이어벨트 자동화 라인에서 근로자들이 부품을 조립을 끝내면 로봇을 활용한 자동검사시스템을 거쳐 가스보일러 신제품이 쉴새 없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2020년 연간 50만대 생산체제 구축

경동은 200억원을 들여 약 4만8000㎡ 면적에 신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2020년 최종 완공할 계획입니다. 완공에 앞서 1기 생산라인은 지난 7월부터 시험가동에 들어갔는데요. 다음달 준공 허가가 나면 본격적인 양산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라인 1개의 생산 능력이 연간 25만대에 달한다고 합니다. 경동은 추가로 라인을 증설해 2020년엔 연간 50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출 방침입니다. 연 10만대를 생산했던 기존 베이징 공장 대비 생산능력이 크게 확대되는 겁니다.
중국은 보일러 업계에선 기회의 땅으로 여겨집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석탄난방을 가스난방으로 교체하는 ‘메이가이치(煤改氣)’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석탄난방 비중을 2016년 83%에서 2021년 30%로 줄이겠다는 게 중국 정부의 목표이지요.

이를 위해 가스보일러로 바꾸는 가구에 보조금을 주고 있는데요. 지방정부별로 보조금 수준은 다르지만 평균 한 가구에 2000~3000위안(32만~49만원)가량을 지급합니다. 중국에서 가스보일러 가격이 8000위안(131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25~30%의 비용을 보전해주는 셈이지요. 보조금을 받고 가스보일러로 교체하려는 가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데요. 이 사업이 작년 4월 베이징을 기점으로 시작되면서 1년 만에 중국의 가스보일러 시장은 두 배로 팽창하며 세계 1위로 뛰어올랐습니다. 지난해 중국 가스보일러 시장은 약 550만대 규모로 집계됐습니다.
◆가스온수기로 시장 확대

현재 베이징과 텐진 등 2개시(市)와 허베이, 산둥, 산시, 허난 등 4개성(省) 등 6개 지역에서 메이가이치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경동나비엔은 6개 지역에 모두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6개 지역 모두 사업자로 선정된 외국계 기업은 경동나비엔이 유일하다는 설명입니다.
김용범 경동나비엔 동사장(이사장)은 “20년 넘게 중국 시장을 공략해온 데다 독일 바일란트나 보쉬 등의 제품에 비해선 가격이 합리적이고 중국 현지 기업보다 기술력은 뛰어난 점은 인정받은 결과”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8월 기준 세계 298개사가 중국 시장에 진출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요. 경동은 한·중 수교가 이뤄진 1992년 국내 보일러 업계 처음으로 중국에 수출을 시작했고 1995년 외자 법인으로는 최초로 중국에 법인을 세웠습니다.

경동은 신공장 건설을 계기로 가스보일러 외에 가스온수기 시장 공략을 확대할 방침입니다. 다른 국가에서 가스온수기는 난방시설로 여기고 있지만 중국에선 대표적인 주방 가전제품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가스온수기 시장은 연간 1600만대에 이르는데요. 이는 가스보일러 시장의 세 배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경동은 올해 가스온수기 판매량이 8000대에 불과하지만 내년엔 4만5000대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김용범 동사장은 “중국 가스보일러 시장은 2020년부터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며 “지난해엔 중국 보일러 시장에서 9등에 머물렀지만 2020년엔 5위, 2022년 3등으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