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멜로 실험은 미래에 얻게 될 이익보다 현재 눈앞의 이익을 우선하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선생님이 돌아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면 마시멜로 두 개(미래 이익)를 먹을 수 있는데도 지금 당장 한 개(현재 이익)를 먹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 실험에 참여한 4살 아이들을 15년 후 추적 조사한 결과,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기다린 아이들이 바로 먹은 아이들보다 대학입학시험 성적이 210점 높았다. 연구진은 어렸을 때의 참을성과 자제력이 학업 성적과 사회적 성공에 영향을 미친다고 결론을 내렸다. 미래 이익을 위해 참을성을 발휘하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미래는 앞으로 올 때, 즉 앞날을 의미한다. 가깝게는 내일이나 다음달일 수도 있고, 멀게는 내년 또는 수십년 후가 될 수도 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를 구분해 사람의 선택이 달라지는지를 설명했다. 가까운 미래 상황에선 ‘오늘 사과 한 개’(a)와 ‘내일 사과 두 개’(b) 중에서 선택해야 하고, 먼 미래 상황에선 ‘1년 후 사과 한 개’(c)와 ‘1년 1일 후 사과 두 개’(d) 중에서 골라야 한다.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 모두 하루 차이로 사과 한 개가 두 개가 되는 것은 같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가까운 미래에서 a를 선택했다면 먼 미래에선 c를 고르고, b를 선택했다면 d를 고를 것으로 예상된다.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가까운 미래에선 상당수 사람이 a를 선택하지만 먼 미래에선 c를 고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가까운 미래에선 하루 일찍 받는 것이 사과 한 개를 포기할 정도지만 먼 미래에선 하루 정도는 충분히 더 기다릴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는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의 할인율이 다르다는 말로 표현된다. 할인율은 미래의 가치를 현재 시점의 가치로 계산하기 위해 적용하는 비율이다. 가까운 미래 상황에선 내일의 사과 두 개가 오늘의 사과 한 개만 못하므로 할인율이 높다. 반면 먼 미래 상황에선 1년 1일 후 사과 두 개가 1년 후 사과 한 개보다 선호되므로 할인율이 낮다. 이처럼 가까운 미래엔 상대적으로 높은 할인율이, 먼 미래엔 낮은 할인율이 나타나는 것을 가리켜 ‘쌍곡선형 할인’이라 한다.쌍곡선형 할인 성향이 강한 사람은 자기통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한다. 마시멜로 실험에서처럼 참을성과 자제력이 부족한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작은 이익에 집착해 미래의 큰 이익을 포기한다. 재무설계와 관련해선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 쌍곡선형 할인 성향의 사람들도 보유한 자산이 종류별로 유동성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모든 유동자산을 즉각적으로 소비하더라도 연금, 보험, 부동산 등 유동성이 낮은 자산은 바로 소비하기 어렵다. 그 덕분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현재 소비를 위해 미래 큰 이익을 포기하는) 오류’를 피할 수 있다. 노후 대비를 위해 연금에 들어 비유동자산을 만들수록 쌍곡선형 할인 성향의 단점을 이겨내기 쉬워진다.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는 의사결정의 기준에서도 차이가 난다. 심리학자 트롭(Trope)과 리버먼(Liberman)이 제안한 해석수준이론에 따르면 가까운 미래에선 구체적 정보, 먼 미래에선 추상적 정보가 의사결정의 기준이 된다. 이를 감안하면 먼 미래를 위한 연금에 가입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동안엔 노후에 연금생활자로 넉넉한 생활을 하는 모습 같은 추상적 정보에 집중하는 게 도움이 된다.가까운 미래 상황은 실행 가능성을 따지고, 먼 미래 상황은 바람직성을 중시하게 된다. 예를 들어 외부 강사 초청 강연회가 조만간 열릴 예정이면 강사와 강연 내용을 잘 모르더라도(바람직성이 낮더라도) 자신이 참석하기 좋은 시간에 열리는(실행 가능성이 높은) 강연회에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달리 강연회가 먼 미래에 예정됐다면 자신이 참석하기 좋은 시간인지(실행 가능성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흥미롭고 도움이 되는 강연인지(바람직성 여부)를 기준으로 강연회 참석을 결정한다. 먼 미래를 위한 연금 상품 가입은 그 연금을 활용한 노후 대비라는 바람직성에 초점을 맞춰 결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가까운 미래는 사소한 것(주변 속성)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데 비해 먼 미래는 본질적인 것(중심 속성)을 중시한다. 먼 미래를 위한 연금 상품 가입 문제는 노후 대비에 효과적이고, 효율적인가라는 본질적인 점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longrun@hankyung.com
해외 경제학자에게 한국 경제를 물어볼 때가 있다. 혹시나 귀가 번쩍 뜨이는 발언이 나올까 하는 기대에서다. 질문을 받은 해외 경제학자는 대개 두 부류로 나뉜다. “한국 경제를 몰라 대답하기 어렵다”는 쪽과 기다렸다는 듯이 답변을 내놓는 쪽이다. 주의 깊게 볼 건 후자다. ‘척척박사’처럼 보이지만 이름값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질문자의 의도를 읽고 대답을 내놓는 노회한 학자도 많다.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경제학자다. 한국에도 《창조적 학습사회》 등으로 꽤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을 높이 평가한 ‘J노믹스와 한국의 새로운 정책 아젠다’ 기고문이 국책연구소인 산업연구원이 펴내는 ‘i-KIET 산업경제이슈’에 게재됐다. 어떤 경위로 기고가 이뤄진 건지 내막은 모른다. 산업연구원은 보도자료까지 냈다.칭찬은 기분 좋게 들리지만 납득할 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왜 칭찬하는지 그 의도를 의심받게 된다. 유감스럽게도 스티글리츠 기고문은 곳곳이 의문투성이다. 한국과는 번지수가 안 맞는 자신의 지론들을 엮어 양을 채운 듯한 느낌마저 든다.스티글리츠는 “한국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바탕으로 ‘J노믹스’라는 새롭고 혁신적인 경제전략을 도입해 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J노믹스는 중산층 중심 경제와 지식경제 창출이라는 두 기둥으로 과거와 다른 경로를 개척하고 있다”고도 했다. 번지르르한 목표 제시와 어떻게 달성하느냐의 문제는 다르다. 경제학자라면 지난 1년간의 J노믹스를 실증적으로 살펴야 하는 건 기본일 텐데 이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스티글리츠는 교육지표 몇 개를 끌고 들어와 한국을 칭찬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교육개혁은 물 건너갔다. 그는 복잡하고 창의성이 요구된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통령이 주문한 ‘단순하고 공정한’ 입시제도 마련 때문에 일대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 인공지능(AI)과 공존을 모색해야 할 미래세대 교육은 뒷전이고 대학은 죽어가는 중이다.스티글리츠는 한국의 ‘적극적인 노동정책’을 평가하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있다. 강성노조, 기존 근로자의 포로가 된 ‘친(親)노동정책’이 신규 근로자의 진입, 새로운 일자리로의 이동성을 가로막는 현실이 ‘학습사회’를 강조하는 그의 눈엔 왜 안 보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스티글리츠는 시장을 보완하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지만, 한국은 “시장이 정부를 보완하라”는 쪽으로 가고 있다. 정부 주도라는 유산비용이 줄어들기는커녕 권력이 시장을 통제하는 이른바 ‘코포라티즘(corporatism)’이 경제를 위협하는 지경이다. 그는 ‘시장실패’를 말하지만 한국에선 ‘정부실패’가 더 두렵다.스티글리츠는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전략을 칭찬하면서 경제력 집중 문제를 지적한다. 경제력 집중이 두렵다고 기업의 성장의지를 꺾는 나라가 있으면 예를 한번 들어 보라. 역사적으로 봐도 경제력 집중을 깬 건 정부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 새로운 투자, 새로운 수요, 새로운 시장, 새로운 산업이었다.스티글리츠가 이를 위한 ‘산업정책’을 강조하는 거라면 백번 찬성이지만, 그 전에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그 ‘새로운’ 것을 향한 기업가정신의 분출을 가로막는 규제가 많다는 건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규제완화’로 인한 미국 금융의 폐해를 말하지만 한국 금융은 ‘규제과잉’으로 금융 노릇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경제의 역동성을 죽여놓고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을 백날 부르짖어 봐야 헛일이다. 안에서 나오는 비판은 듣기 싫고 밖에서 노벨경제학상의 권위를 빌린 칭찬은 듣고 싶은 ‘보이지 않은 손’이라도 있었던 건가. 산업연구원이 스티글리츠에게 지급한 기고료가 얼마인지는 알고 싶지 않다. ‘지식사대주의’라는 자괴감만 더해질 테니.ahs@hankyung.com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가 “미국 증시는 (기업 주가가) 비싸고 취약하며 부동산 역시 과열돼 있다”고 경고했다. 9년째 확장 중인 미국 경기는 언제든 침체로 접어들어도 이상할 게 없다고 덧붙였다. 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실러 교수는 2000년 닷컴기업 거품과 2005년 주택가격 거품을 예고한 것으로 유명하다.실러 교수는 6일(현지시간) 미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미국경제학회(AEA)에서 기자와 만나 이같이 진단했다. 그는 “주가가 잠시 더 올라갈 수 있겠지만 너무 고평가돼 있어 결국 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 증시의 변동성은 작지만 위험한 시기”라며 “투자한다면 미국보다 세계 증시에 분산 투자하라”고 주장했다.실러 교수는 그 근거로 미 증시의 경기조정주가수익률(CAPE)이 33배로 26개국 증시 중 가장 높다는 점을 내세웠다. CAPE는 그가 10년 이동평균 실질주가수익률로부터 주가가 얼마나 뛰었는가를 측정하는 지표로 주식의 고평가 여부를 가늠하는 척도다. CAPE가 30을 넘은 것은 1929년 대공황과 2000년 전후 닷컴기업 거품이 꺼졌을 때였다.실러 교수는 “미국 증시의 또 다른 위험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라며 “최근의 증시 상승이 자신의 업적이라며 투자를 부추기고 있는데 매우 위험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을 1920년대 경제에 무지해 대공황을 촉발한 캘빈 쿨리지 전 대통령과 비교했다.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세제개편에 대해서도 “경기를 조금 부양할 수는 있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다.실러 교수는 미국 부동산시장의 거품 가능성까지 경고했다. 그는 “최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케이스실러지수가 연 6.2%에 달하고 있다”며 “물가상승률이 낮은데도 그렇게 높은 건 거품”이라고 진단했다. “이미 지수가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수준을 넘어섰다”며 “한두 해는 몰라도 그 이상 더 가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케이스실러지수는 미국 주택가격 동향을 나타내는 가장 일반적인 지표로 역시 실러 교수가 고안했다.실러 교수는 미국 경기가 오랜 기간 확장해 왔으며, 올해 어느 순간에라도 갑자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 경제와 관련해선 “북한 문제가 단기 전망을 흐리고 있다”며 “기업가 정신이 멈춰 있다”고 지적했다.필라델피아=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