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남북한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북 비핵화 협상이 다시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다. 하지만 양국이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더라도 갈 길은 멀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협상의 궁극적 성패는 핵실험장 폐쇄와 같은 ‘미래 핵’이 아니라 지금 보유 중인 핵무기와 핵물질 등 ‘현재 핵’ 제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동안 줄기차게 북한에 보유 핵무기와 핵물질에 대한 철저한 신고·검증과 폐기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북한은 직접적인 언급을 피해왔고 9·19 평양공동선언문에도 그 내용은 빠져 있다. 전문가들은 이 부분이 채워지지 않으면 북한 핵 폐기는 공염불이 될 뿐 아니라 비핵화 협상도 겉돌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공 넘겨받은 트럼프 "김정은 곧 만날 것"… 폼페이오, IAEA 있는 빈서 회동 제안
◆뉴욕 이어 빈 회동 추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곧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들과 만난 그는 “김정은에게 엄청난 서한을 받았다”며 “북한과 관련해 큰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도 했다. 11월6일 미국 중간선거 직전인 10월 중 두 번째 미·북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미 정부가 전날까지 대북제재 이행을 강조하며 북한 압박의 고삐를 죄던 행보를 감안하면 극적인 반전이다.

미국은 유엔총회 기간인 다음주 뉴욕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이용호 북한 외무상의 회담을 제안했다. 또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북한 카운터파트 간 비핵화 협상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 본부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되도록 빨리 시작하자고 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전’이다. 특히 IAEA는 북한 핵 사찰이 재개되면 사찰 업무를 맡게 될 곳이란 점에서 미국이 즉흥적으로 던진 카드가 아니라 상당히 치밀하게 준비한 기획으로 볼 수도 있다.

미·북 정상회담과 실무협상이 재개되면 최대 관심은 북핵 신고·검증과 종전선언 간 ‘빅딜’ 여부다. 미국과 북한은 지난 6월1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이 문제에서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미국은 ‘선(先) 비핵화-후(後) 종전선언’을 고집했고, 북한은 ‘비핵화 조치와 종전선언의 동시 이행’을 요구해왔다. 팽팽한 대립 탓에 지난달 24일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계획이 취소되기도 했다. 미국으로선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뒤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북한과의 협상에서 핵 신고와 폐기, 명확한 검증 절차에 대한 답을 얻어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비핵화 시간표도 주목할 대목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 비핵화를 위해 새로 가동될 ‘빈 채널’을 설명하면서 “2021년 1월까지 완성될 북한의 신속한 비핵화 과정을 통해 미·북 관계를 변화시키는 한편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2021년 1월) 내 비핵화 목표를 확인한 것이다.

◆비핵화 완성까지는 ‘산 넘어 산’

하지만 현재로선 미·북 비핵화 협상이 제대로 된 성과를 낼 것이라고 속단하기 힘들다. 북한은 국제 전문가 참관 아래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과 발사대를 영구 폐기하고 미국의 상응하는 조치에 따라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겠다고 밝히는 등 일부 성의를 보이긴 했다.

문제는 북한 비핵화 절차와 관련한 미국의 눈높이가 이보다 훨씬 높다는 데 있다. 미국은 그동안 핵무기와 핵물질 리스트 신고 등 ‘현재 핵’ 폐기를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요구해왔고 철저한 검증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북한은 여기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9·19 평양공동선언문에 비핵화 관련 언급이 있긴 하지만 알맹이가 빠져 있다는 점에서 회의적인 평가가 미국에서 나오고 있다. 게다가 미국 내에선 북한이 영변 핵시설 외에 추가로 최소 1개 이상의 비밀 핵시설을 운영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럼에도 미국이 갑자기 ‘협상 모드’로 전환한 것은 북한이 평양공동선언문에 나오지 않은 ‘플러스 알파(α)’를 전달했기 때문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남북한 정상이 공식 발표한 내용 외에도 더 많은 비핵화 관련 논의를 했다고 기자들에게 전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도 “분명히 선언문에 담지 못한 김 위원장의 메시지가 있을 것이고, 문 대통령이 (이달 말 유엔총회가 열리는) 뉴욕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재개하는 데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계산이 깔려 있다는 시각도 있다. 북핵 해결을 최대 외교 업적으로 삼으려는 선거 전략이라는 지적이다. 이 경우 비핵화 협상이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미국과 북한 모두에 ‘시간 끌기’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